[한자 문맹(漢字文盲) 벗어나자] 漢字를 외국어 취급… 팔만대장경도 부정할 판

    입력 : 2014.02.03 03:01

    [4] 한글 專用만 애국인가?

    한자교육이 반민족 행위라는 주장, 피해의식 사로잡힌 문화쇄국주의
    우리말의 70% 차지하는 한자어는 中·日과 다른 역사·관습적 國字
    외국 학자들 "한국 문화 알기 위해 한자·한문 교육 반드시 필요하다"

    한자 이해력이 어휘력에 기여하는가에 대한 중·고교 국어교사 설문 조사 결과 그래프

    "마흔 이하 젊은이들은 한자(漢字)를 몰라서 의사소통 과정에서 오해가 많이 생겨요. 한자는 외국어가 아니라 한국어의 큰 범주에서 봐야 해요. 한국 문화를 알게 하려면 한자와 한문 교육이 필요합니다."

    독일인 한국학자 베르너 사세 전 한양대 석좌교수가 최근 본지 인터뷰 중 "학생들이 한국 문화에 대해 너무 무지해서 놀랐다"며 한 말이다. 한자를 가르쳐야 하는 이유가 '한국 문화를 잘 알게 하기 위해서'라는 뜻이다. '한글만 쓰고 배우는 것이 곧 애국'이라는 일각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 셈이다.

    "세종대왕도 한글·한자 함께 썼다"

    "한글은 온 누리에서 가장 훌륭한 글자로서 우리의 자랑이고 보물이다. …한자 혼용은 왜정시대 식민지 교육 찌꺼기로서 이제 피어나는 우리 자주문화와 '한류' 바람을 가로막는 반민족 행위다." 한글 관련 단체들이 지난해 3월 발표한 '초등학교 한자 교육 절대로 안 된다'란 제목의 성명서 일부다. 한글로만 표기하는 것이 민족적 자주성(自主性)을 지키는 일이라고 주장하며, 한자 조기(早期) 교육을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한글 전용론자의 이 같은 시각은 우리 문화의 일부가 된 지 오래인 한자에 대해 '외래문화'라는 이유로 배척하는 것으로,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문화쇄국주의'란 비판을 받고 있다.

    심재기 전 국립국어원장(서울대 명예교수)은 이 성명서에 반박하며 "자기 것만을 고집하지 않고, 유연하고 열린 자세로 외부 문물을 수용할 수 있을 때 그 민족의 발전은 보장되는 것"이라고 했다. 미국인인 로버트 파우저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지난해 한 언론 기고에서 "지금은 열린 자세로 문화적 교류를 하면서 동시에 자국에 대해 깊이 이해하는 것이 요구되는 시대"라며 "그렇다면 더더욱 한국어 문자에서 한자를 빼낼 이유가 없다"고 했다.

    한자문맹 우려하는 외국 출신 한국학 전문가들의 견해 정리 그래픽

    '한자 혼용이 왜정시대(일제 강점기) 잔재'라는 주장도 우리 역사에서 한자 사용의 역할을 도외시한 것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훈민정음 창제 당시 '용비어천가' '월인천강지곡' 등은 한자어는 한자로, 고유어는 훈민정음으로 구별해 적었다. 김창진 초당대 교수(국문학)는 "세종대왕에서 비롯된 국한자(國漢字) 혼용은 조선왕조는 물론 개화기, 일제 강점기, 광복 이후 1980년대까지 한국어 문자 표기에서 주류(主流)였다"고 했다.

    팔만대장경은 딴 나라 문화유산인가

    '한글만이 우리 고유(固有) 문자'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2000여년 동안 우리 민족이 사용해 온 한자는 '고유한 것'이 아니고 570년 전 창제한 한글만 '고유한 것'이냐"는 반론이 제기된다. 그런 논리라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팔만대장경은 5200만 자(字)가 모두 한자로 새겨져 있기 때문에 '우리 문화유산'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다.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한자 문맹(文盲)' 현상은 한자어가 우리 고유문화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객관적 사실조차 희석시키고 있다. 한자·한문으로 된 수많은 고전(古典) 독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 현대 우리말 어휘 70%를 차지하는 한자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단지 한글로 발음만 표기하는 데 그치도록 하는 것이다.

    김경수 중앙대 명예교수(국문학)는 "우리말은 한자어로 된 어휘가 인체의 척추처럼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며 "한자 사용 반대는 우리말 언어의 가장 큰 특색이자 장점인 표의(表意·뜻을 나타냄) 문자와 표음(表音·소리를 나타냄) 문자의 혼용을 막아 우리말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사는 곳'이라는 말을 그대로 써도 될 경우도 있지만, 상황에 따라 '거처(居處)' '처소(處所)' '거소(居所)' '우거(寓居)' '주소(住所)' 등의 다양한 한자어 표현 중 하나를 골라 쓰면 더 적확한 용어가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말들을 한글로만 표기하면 의미상 차이를 분간하기 힘들다.

    이계황 전통문화연구회장은 "우리가 쓰는 한자는 소리·형태·의미에서 중국이나 일본과 구별되는 우리 문자이며 역사적·관습적 국자(國字)로 봐야 한다"며 "한자를 공용 문자로 인정하지 않고 외국 문자로 취급하면 우리 정신문화에서 과거와 현재의 맥을 끊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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