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구에서 6년째 치킨 호프집을 운영하는 여인옥(여·50) 사장은 20일 오후 여느 날과 다름 없이 닭을 손질하며 장사 준비를 했다. 고(高)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발생 소식에도 여씨는 "매출에는 전혀 이상이 없다"고 말했다. 19일 오후 10시쯤엔 1~2층 50여석 규모의 매장이 손님들로 가득했다. 본지가 19~20일 서울 마포·영등포·종로구 일대에서 닭·오리를 조리하는 30여개 매장을 확인해본 결과, 업주 대부분이 "AI 때문에 장사가 안 된다는 건 몇 년 전 얘기"라고 했다. 오히려 AI 확산으로 물량 공급이 차질을 빚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서대문구의 한 치킨집 주인 장선희(여·45)씨는 "AI로 판매가 줄어드는 것보다는 살처분으로 인한 물량 부족으로 공급가격이 오를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장씨 역시 19일 평소와 마찬가지로 치킨 100마리 이상을 팔았다.
한국에서 2003년부터 이번까지 다섯 차례 발생한 AI는 지금껏 닭·오리 관련 산업에 큰 타격을 줬다. AI가 발병한 2008년, 2010년에는 치킨 프랜차이즈 가맹점 등의 매출이 절반 가까이 떨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치킨 프랜차이즈업체들도 큰 걱정을 하지 않는 분위기다. 대형 치킨 프랜차이즈업체 A사 관계자는 "AI가 발생한 이번 주말 매출은 지난 주말보다 오히려 2% 정도 올랐다"면서 "2006년에는 전년보다 30%, 2008년엔 10% 하락하는 등 AI에 따른 매출 감소도 완화 추세에 있다"고 말했다. 다른 프랜차이즈업체 B사 역시 "1월은 원래 방학 기간이라 배달 주문이 많아 매출이 오른다. AI에 영향받지 않고 꾸준히 매출이 오르는 중"이라고 밝혔다.
서대문구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김옥빈(여·56)씨는 "예전 AI 파동 때만 해도 '치킨은 안전하다'는 안내문을 매장 입구에 붙이고 본사 차원에서 이를 홍보하며 난리가 났었지만, 이번에는 소비자들의 큰 동요가 없는 만큼 업주들도 지켜보자는 생각이다"고 말했다. 주요 치킨 프랜차이즈업체들은 AI 발생 때마다 으레 해왔던 안전 홍보 활동도 아직 계획하지 않고 있다. 2006년 AI 파동 당시 치킨 프렌차이즈들은 앞다투어 소비자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명동에서 '치킨은 안전하다'는 홍보물을 내걸며 가두행진을 벌이기도 했다. A사 관계자는 "당시 치킨을 먹고 AI에 감염되면 20억원을 배상하겠다는 상해보험 홍보 행사도 여는 등 안전 홍보에 열을 올렸지만, 이제는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개선된 것 같아 따로 안전 홍보를 할 계획은 없다"고 전했다.
프랜차이즈 업계와 전문가들은 지난 10년간 AI 사태가 반복되면서 소비자들이 '오리·닭을 익혀 먹으면 안전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는 '학습 효과'가 나타났다고 분석한다. 인천대 소비자심리학과 이영애 교수는 "AI에 감염된 닭·오리라도 75도에서 5분 이상 익혀 먹으면 문제가 없다는 과학적 사실에 대해 소비자들이 신뢰를 갖기 시작했다"며, "같은 상황을 여러 번 겪으면서 불안감이 해소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닭·오리 관련 식당이 아닌 생닭 매출은 다소 타격을 받는 모습이다. 이마트는 AI 발병 사실이 알려진 지난 17일부터 19일까지 닭·오리 매출이 2주 전보다 10%가량 줄었다고 밝혔다. 롯데마트도 17일부터 이틀간 오리는 지난주 대비 33%, 닭은 18.7% 매출이 줄었다고 발표했다. 롯데마트 측은 "매출 감소가 AI의 영향 때문으로 단정하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