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일제 戰犯까지 인도적 대우… 日은 이 정신 깨뜨려"

입력 2014.01.18 03:15

[안용현 베이징특파원 - 푸순 戰犯관리소 르포]

중국(1949년 집권 공산당), 日전범 1000명 중 死刑 '0'… 대부분 돌려보내
中지도자 "복수가 복수 낳는다" 戰後 책임 추궁 비교적 관대

안용현 베이징 특파원
안용현 베이징 특파원
"일제 전범(戰犯)의 인격과 민족적 습관을 존중하라."

17일 중국에 상주하는 외신 기자 40여 명이 방문한 랴오닝성 푸순(撫順)시의 전범관리소에 걸려 있는 '영원한 총리' 저우언라이(周恩來)의 지시 사항이다. 1950년 중국 공산당이 세운 푸순 전범관리소는 2차 대전 당시 중국을 침략했던 일제 전범 982명과 만주국 전범 71명을 수용했던 곳이다. 쑨지청(孫繼承) 전범관리소장은 "중국은 일제 전범에 대해 인도주의적 대우를 해줬다"며 "이는 복수가 복수를 낳는 비극을 끊어야 한다는 저우언라이의 가르침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이곳은 관리소 측이 뇌질환으로 쓰러진 핵심 전범(만주국 총무장관)을 정성스럽게 치료하는 사진과 전범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음악·체육 활동을 하는 사진 등을 전시하고 있다. 관리소가 공개한 전범의 하루 일과는 '기숙학교'와 비슷해 보였다. 오전 5시에 일어나 오후 8시에 취침할 때까지 세 끼를 먹었다. 하루 5시간 30분 동안 반(反)제국주의와 세계 혁명의 미래 등에 대해 공부했다. 운동과 오락 시간도 각 2시간씩 배정됐다. 중국 측은 이날 전범관리소의 병원과 이발소, 목욕탕 등을 외신 기자단에게 보여줬다.

중국은 2차 대전 당시 3500만 명이 목숨을 잃거나 다쳤다. 일제에 가장 비참하게 당한 피해국이면서도 '용서와 화해'라는 전후(戰後) 질서를 관대하게 수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중국이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다른 나라보다 강력하게 반발하는 것은 용서하면서 수용한 '전후 질서', 즉 '화해의 전제'를 일본이 깨뜨렸다고 간주하기 때문이다.

중국 랴오닝(遼寧)성 푸순(撫順) 전범관리소 내부에 중국 의료진이 일본 2차 대전 전범(戰犯)들을 치료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 걸려 있다.
중국 랴오닝(遼寧)성 푸순(撫順) 전범관리소 내부에 중국 의료진이 일본 2차 대전 전범(戰犯)들을 치료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 걸려 있다. /푸순=안용현 특파원
실제로 전후 일본에 대한 중국의 책임 추궁은 비교적 관대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을 때 중국을 통치하던 국민당의 장제스(蔣介石)는 라디오를 통해 "덕(德)으로 적을 대하라"고 호소했다. 유명한 '이덕보원(以德報怨)' 연설이다. 이 연설은 중국에 남았던 일본인에 대한 보복을 억제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민당 정권이 중국 10개 지역에서 단행한 일제 B·C급 전범 재판도 중국인의 피해 규모를 감안하면 가혹했다고 보기 어렵다. 법정에 세운 피고 883명 중 149명에게 사형, 83명에게 무기징역, 272명에게 유기징역을 각각 선고했다. 사형 숫자만 보면 미국(140명)·호주(153명)와 비슷하다. 일제 전범 226명에게 사형을 선고한 네덜란드나 223명의 영국보다 오히려 적다.

2차 대전 이후 연합국의 일본군B·C급 전범 처리.
1949년 집권한 공산당 정권 역시 1000여 명이 넘는 일제 전범 가운데 누구에게도 사형이나 무기징역을 선고하지 않았다. 유기징역만 45명에 그쳤다. 당시 전범 재판을 했던 연합국 정권 가운데 한 사람도 사형에 처하지 않은 경우는 중국 공산당이 유일했다. 당시 공산당 정권이 내세운 재판의 원칙은 ‘죄는 일본 국군주의에 있을 뿐 일본 인민에게는 없다’는 것이었다. 또 중국은 1964년까지 900명이 넘는 전범 대부분을 일본으로 돌려보냈다. ‘용서와 화해’라는 중국의 기조는 1972년 중·일 수교로 이어졌다. 당시 중국은 일본에 대한 배상 청구를 포기했다.

중국 외교부는 이날 외신 기자단을 전범관리소에 앞서 ‘핑딩산(平頂山) 민간인 학살 유적관’으로 안내했다. ‘핑딩산 학살’은 1932년 9월 일제가 중국 주민 3000여 명을 모아놓고 총으로 집단 살해한 사건이다. 저우쉐량(周學良) 유적관장은 “원한을 갚기 위해 유적관을 만든 게 아니다”며 “역사를 거울삼아 이런 비극의 반복을 막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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