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영화 리뷰] 글로 표현하기엔 역부족… 격정의 12분

조선일보
  • 변희원 기자
    입력 2014.01.16 03:02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16일 개봉)'의 시사회가 열린 7일 오후 서울 강남의 한 극장. 영화 시작한 지 100분쯤 지났을 때 8명의 관객이 자리를 떴다. 아마 예상보다 러닝타임이 꽤 길다(3시간)는 것을 깨닫고 허기를 채우러 갔을 수도, 12분간 이어진 두 여성의 성행위 장면을 보기가 불편했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그들은 이 영화의 뜨거움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자유롭고(프랑스 국기에서 푸른색은 자유를 상징한다) 용감한 여자들이 발산하는 시퍼런 열기를 견딜 수 있는 자라면, 세 시간이 지날 때쯤 푸른 황홀경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의 그래픽 노블 '파란색은 따뜻하다'를 튀니지 출신 압델라티프 케시시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의 원제는 '아델의 이야기 1부와 2부'다. 아델(아델 엑사르코풀로스)의 일상과 연애를 충실히 담은 영화란 뜻이다. 작년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때론 엠마의 머리로 또 아델의 원피스로, 때로 뜨거웠다 또 차가웠다 하며‘블루’는 모습과 온도를 바꿔가며 영화에 머무른다.
    때론 엠마의 머리로 또 아델의 원피스로, 때로 뜨거웠다 또 차가웠다 하며‘블루’는 모습과 온도를 바꿔가며 영화에 머무른다. /판씨네마 제공
    서민 가정에서 자란 고등학생 아델은 아침에 통학 버스를 놓칠세라 뛰고, 학교에서 친구들과 남자 이야기를 낄낄대며 아버지가 해주는 스파게티를 두 그릇씩이나 해치운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문학적 감수성을 갖고 있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유치원 교사로 일하고 싶어한다. 어느 날 횡단보도에서 미대생 엠마(레아 세이두)와 마주치는 순간, 그의 가슴에 구멍이 뚫린다. 그렇게 만난 두 여자가 사랑에 빠지는 데까지가 1부다. 엠마를 아델의 과외 교사로 알고 있는 아델의 부모는 엠마에게 "미술로 벌이가 되느냐, 현실적인 일을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2부는 아델과 엠마의 계급적 차이가 작은 균열이 돼 둘의 관계가 무너지는 과정을 담았다.

    카메라는 평범한 연애를 샅샅이 훑는다.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아델의 입술을 쫓는다. 감독은 "아델 역을 캐스팅할 때 입술을 유심히 봤다"고 했다. 그녀의 도톰하고 동그란 입은 그 자체로 연기를 해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스파게티를 먹을 때 기름으로 번들거리는 입, 잠을 잘 때 슬쩍 벌어진 입, 연인과 사랑을 속삭일 때 벌어진 입술 새로 보이는 앞니까지, 입은 아델, 혹은 아델로 상징되는 여자라는 존재다. 이 영화는 먹고 사랑하고 화내고 웃는, 여자라는 존재에 대한 고찰이며 찬양이다. 엠마와 아델이 두 번째 만남에서 사르트르와 실존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그런 감독의 의도가 더욱 명확해진다.

    12분에 걸친 아델과 엠마의 성행위 장면에 대해선 활자로 표현하는 게 무의미하다. 육체가 개입하지 않은 사랑은 의미가 없으며, 사랑 없는 인생은 그보다 더 의미가 없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전달한다. 하지만 세속적인 호기심에서 비롯된 기대와 우려는 모두 좌절될 것이다. 아델과 엠마의 몸이 뒤엉키는 장면은 원시적인 감정과 본능을 일깨우지만, 거기에서 포르노그래피적 쾌감은 절대 얻지 못할 것이다.

    마라톤 풀코스를 질주하면서도 그게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라는 듯 연기하는 아델 엑사르코풀로스와 푸른 머리를 우아함과 자유분방함의 상징으로 만든 레아 세이두가 없었다면 애당초 만들어질 수 없었을 영화다. 청소년 관람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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