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1990년 급작스럽게 통일한 이후 통일비용이란 후유증을 톡톡히 치렀다. 이는 서독이 충분한 준비 기간 없이 동독 주민들에게 1990~2009년까지 20년간 약 2조유로(2009년 환율 적용 시 3548조원)를 소득보전 비용 등으로 쏟아 부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독일처럼 급격한 소득보전 정책을 쓰지 않고 인프라 등 생산적 분야에 투자한다면 훨씬 적은 비용으로 통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가 추정한 2015~2035년 한국의 통일 비용도 독일이 20년간 쓴 비용의 절반에 못 미치는 923조~1627조원이었다.
◇준비 안 된 독일…비용 절반 사회보장에 써
독일은 통일에 대한 준비가 거의 안 된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통일을 맞았다. 이 바람에 1991~2003년 13년간 1조2800억유로라는 천문학적 통일비용을 지출했다. 이 가운데 연금이나 노동시장 보조, 육아·교육 지원 등 사회보장성 지출이 절반(49.2%)에 가까운 6300억유로에 달했다. 통일 후 주(州)별 재정 균형을 조정하는 비용 등으로도 2950억유로(23%)를 지출했다. 도로·철로 등 인프라 재건(12.5%)과 지역경제 등 활성화 지출(7%)을 포함한 경제적 투자 비용은 19.5%에 불과했다. 통일비용 대부분이 사회복지 분야에 투입되고 정작 산업기반 확충과 경제 건설에는 거의 투자되지 않는 바람에 통일 혜택은 쓴 돈에 비해 적었다. 독일은 지금까지도 매년 GDP의 약 4%인 1000억유로를 소득보전성 비용 등으로 지출하고 있다.
독일이 화폐가치를 무시하고 동·서독 화폐를 1대1로 교환한 것도 큰 정책적 실수였다. 더구나 생산성이 낮은 동독 노동자의 임금을 지나치게 높게 책정했다. 1991년 동독 근로자의 노동 생산성은 서독 근로자 대비 34.6%에 불과했지만, 임금은 서독 근로자의 절반(50.8%)에 달했다. 동독 화폐의 고평가와 생산성을 초과하는 높은 임금은 동독 기업의 생산비 상승을 유발, 줄도산에 이어 실업자를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한국은 준비할 시간·투자할 주변국 있어
한국은 독일에 비해 객관적 조건은 그리 좋지 않다. 남북한 간 1인당 소득 격차(40배)는 동·서독 격차(2.1배)보다 크고 부양해야 할 북한 인구 비율(남한의 50%)은 동독(서독의 26%)에 비해 많다. 그러나 한국은 독일처럼 급작스러운 통일이 아닌 점진적 통합 방식을 상정하고 있다. 북한 급변사태가 오더라도 '2지역 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제적 통합을 하는 방식이다. 또 독일은 경제적 비용이 전체의 19.5%에 그쳤지만, 우리는 경제적 투자 비용이 전체 통일비용 가운데 90%를 차지할 전망이다. 이 같은 통합 방식은 통일 비용을 절반이나 3분의 1 수준으로 줄여줄 것으로 통일연구원은 분석했다.
정형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는 개성공단 등 남북 경협을 통해 북한의 자생적 경쟁력을 높이는 대신 사회보장성 비용 등은 크게 줄이는 방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한국은 통일 과정에서 독일의 1대 1 화폐통합과 같은 정책적 실수는 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병연 서울대 교수는 "당시 독일의 화폐 교환은 동독 주민의 소득을 보전해주기 위해 일종의 보조금을 준 것"이라며 "우리는 1대1 화폐 교환보다는 북한 기업에 임금 보조금을 지원, 기업의 생산성을 악화시키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점진적 화폐 통합을 추진하고, 유연한 노동정책을 통해 생산성에 맞는 북한 임금정책을 시행하면 북한 기업 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정형곤 선임연구위원은 "동독 경제 재건은 주로 서독이 책임졌다"며 "그러나 북한은 현재 한국을 비롯해 중국·러시아·일본 등에서 투자를 고려하고 있기 때문에 한반도 통일 비용을 더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