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줄 알아, 역겨워!"
마틴 스코세이지(71·사진) 감독과 리어나도 디캐프리오(39)가 지난달 LA 새뮤얼골드윈 극장 엘리베이터에서 내렸을 때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아카데미상 주관 단체) 회원 하나가 그들에게 이렇게 소리쳤다. 이날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이하 '울프') 시사회에서 보수적 회원들은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
'울프'는 스코세이지와 디캐프리오가 5번째로 호흡을 맞춘 영화. 둘은 모두 침체기를 겪을 때 만나 서로의 경력에 불을 밝혔다. 로버트 드 니로를 뮤즈(muse) 삼아 '비열한 거리' '성난 황소' '택시 드라이버' 같은 명작을 만들어낸 스코세이지는 1997년 '쿤둔'으로 흥행 참패를 겪었다. 디캐프리오는 전 세계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타이타닉'(1997)으로 최고 청춘스타로 떠올랐지만 후속작인 '아이언 마스크'와 '비치'가 흥행과 비평에서 모두 실패했다. 예쁘장한 소년에서 진지한 배우로 넘어가는 길 위에서 헤매던 시기, 디캐프리오는 드 니로에게서 바통을 물려받았다. 스코세이지의 '갱스 오브 뉴욕'(2002)은 10여년간 계속된 두 사람 인연의 첫 단추였다. 이후 둘은 '에비에이터'(2004) '디파티드'(2006) '셔터 아일랜드'(2010)와 이번 작품까지 지난 12년간 영화 5편을 함께했다. 스코세이지는 디캐프리오와의 두 번째 작품인 '에비에이터' 당시 "이제 디캐프리오는 소년이 아니라 남자다"라고 인정했으며 이후 '휴고' 단 한 편을 제외하고는 모든 작품에 디캐프리오를 주연으로 내세웠다.
앞서 새뮤얼골드윈 극장에서 벌어진 에피소드에서 보듯이 '울프'에 대한 관객의 호불호(好不好)는 극명하게 나뉠 법하다. 영화는 1980년대에서 90년대 초까지 월스트리트에서 주식 사기로 큰돈을 벌어 매춘과 마약에 써댄 실존 인물 조던 벨포트(디캐프리오)의 영욕(榮辱)을 담았다. 자본이 인간의 결핍을 완벽하게 채웠다고 믿는 그 순간, 인간은 과잉으로 치닫는 모습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만약 여기에 대해 '불호'를 느낀다면, 그것은 자본주의의 탐욕을 준엄하게 꾸짖을 줄 알았던 영화가 세 시간 동안 월스트리트의 섹스와 마약 중독을 파티처럼 보여주기 때문이다. 사기, 불륜, 마약으로 질펀한 난장판을 웃으며 바라보는 데서 오는 죄책감이랄까.
일흔을 넘긴 스코세이지가 자본의 광기를 롤러코스터 탄 것처럼 짜릿하게 그려낼 수 있었던 데는 디캐프리오 공이 크다. 돈과 마약, 섹스를 비정상적으로 탐닉하면서도 늑대 우두머리 같은 카리스마를 보여준 그는 이번 영화에서 생애 최고 연기를 선보인다. 특히 마약 과다 복용으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며 바닥을 기어다니는 연기는 찰리 채플린의 그것에 비견할 만한 슬랩스틱이다.
서로 "배우가 캐릭터를 완전히 자기 것으로 소화하도록 책임감을 안겨주는 스코세이지의 방식이 다른 감독과 작업할 때도 큰 영향을 미쳤다"(디캐프리오) "디캐프리오는 내 영화 열정을 재점화하는 배우"(스코세이지)라고 칭찬한 두 사람. 스코세이지에게 최고 수입 기록('셔터 아일랜드')과 생애 첫 아카데미 감독상('디파티드')을 안겨주었던 두 사람의 이번 결합은 논쟁적이고 흥미로운 결과를 낳았다. 서로의 꺼져가던 불씨를 되살려준 이들은 이제 함께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9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