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pub]재미있는… 그러나 어디서 본듯한 영화 '호빗2'...호빗-스마우그의 폐허

입력 2014.01.05 09:10 | 수정 2014.01.05 09:19

영화 '호빗(The Hobbit)'은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보다 수십년 앞선 시기를 배경으로 삼는, 일종의 전편이다. 영화는 총 3부작으로 이뤄졌다. 1부는 2012년 개봉한 '뜻밖의 여정(An Unexpected Journey)', 2부가 이번에 개봉한 '스마우그의 폐허(The Desolation of Smaug)', 3부는 2014년 개봉 예정인 '또 다른 시작(There and Back Again)'이다.

'호빗'의 주인공 빌보 배긴스는 '반지'의 주인공 프로도의 삼촌이다. 영화 '반지'에서 절대반지를 품고 맹활약했던 프로도는 영화 '호빗'에선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다.

프로도의 삼촌, 빌보는 유유자적하며 한가한 젊은 시절을 보낸다. 그러는 빌보 앞에 마법사 간달프가 찾아온다.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캐릭터가 있다. '반지'를 움켜쥐며 "마이 프레셔스(my precious)"를 외치던 골룸이다.

빌보는 이 절세의 캐릭터와 수수께끼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내기를 해서는, 결국 반지를 빼앗는다. 이게 1부다.

마법사 간달프는 점차 커가는 악의 세력을 차단하기 위해 드래곤 '스마우그(Smaug)'를 죽이고, 빼앗긴 난쟁이 왕국과 보물을 되찾기 위해 원정대를 구성한다. 침략한 이교도를 척살하고 영토를 회복하려는 기독교식 세계관이다.

특수부대의 대장은 난쟁이 왕의 손자인 소린. 그는 13명의 난쟁이로 구성된 특공대를 이끌고 드래곤이 점령한 옛 난쟁이 왕국의 수도 '에러보른'으로 쳐들어간다. 히틀러의 전술로 유명했던 블리츠크리그(Blitzkrieg) 즉, 전격침공작전을 편 것이다. 과정에서 벌어지는 모험담이 2부의 내용이다.

그런데 하나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있다. '호빗'에 등장하는 드래곤 스마우그를 '용(龍)'이라고 번역하면 느낌이 너무 많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드래곤은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우리의 전통적인 '용'과는 엄청 다르다. 이 드래곤은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시커멓고, 징그럽고, 날개 달린' 괴물과 흡사하다. 깩깩거리며 펄렁펄렁 날아다니던 '반지'의 드래곤과 다른 게 있다면 좀 더 사악하고, 수다스럽다는 점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호빗의 드래곤은 말이 많다. 주인공 빌보의 임무는 드래곤이 지키고 있는 '아르켄 스톤'을 훔쳐내는 것. 아르켄 스톤은 7개로 갈라진 난쟁이 종족을 하나로 규합할 수 있는 난쟁이 왕권의 상징이다. 빌보가 그걸 훔치러 들어오자 드래곤은, 네 숨결을 느낄 수 있다느니, 난쟁이의 피 맛을 기억하고 있다느니, 땡전 한 푼 갖고 가지 못할 거라느니 하며 주절주절 수다를 떤다.

이 수다쟁이는 내년 개봉될 호빗 3부에서 화살을 맞고 죽을 것이 틀림없다(안 봐도 비디오다). 만약 드래곤이 윤회를 한다면, '반지'의 드래곤은 떠들다 맞아 죽은 '호빗' 시절의 교훈을 잊지 않고, 과묵한 캐릭터로 다시 태어난 환생일 것이다.

호빗은 재미있다. 2시간 40분의 러닝타임이 숨가쁘게 휘몰아친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내내 어디서 많이 본듯한 기시감이 떠나질 않는다. 기습 공격에 나선 호빗 원정대는 '호수마을'이란 곳에서 발이 묶인다. 이곳의 영주는 탐욕스럽고 무능한 사람. 간신은 그런 영주를 부추겨 더욱 탐욕스럽게 만든다.

이걸 어디서 봤더라? 2001~2003년 개봉된 '반지의 제왕'이다. '반지의 제왕: 두개의 탑'에서 프로도와 샘은 '곤도르'라는 곳에서 발이 묶인다. 이곳의 영주인 데네소르는 호수마을 영주와 마찬가지로 탐욕스럽고 무능한 사람. 그의 영혼을 조종했던 사악한 마귀는 호수마을의 간신처럼, 영주를 부추겨 더욱 아둔하게 만든다.

데자부는 또 있다. 호빗 특공대가 난쟁이 왕국 수도 '에러보른'으로 들어가는 비밀 문 앞에 도착한 장면이다. 특공대는 숨은 문을 찾지 못해 헤매다 발길을 돌린다. 이들이 임무를 포기하려는 순간, 빌보가 극적으로 '마지막 빛'의 수수께끼를 풀어 문을 여는데 성공한다.

이 장면도 '반지'와 오버랩된다. 반지 원정대는 '모리아 광산' 앞에서 수수께끼를 풀지 못해 좌절한다. 간달프가 암호를 풀지 못해 포기하려는 순간, 프로도가 재치를 발휘해 "엘프어로 친구가 뭐죠"라고 묻는다. 간달프가 "멜론"이라고 답하자 문이 열린다.

'호빗'에서 간달프는 강령술사 사우론과 맞대결을 벌인다. 안타깝게도 간달프가 패해 아이센가드에 감금된다. 그런데 이 장면도 '반지'를 연상시킨다. '반지의 제왕: 두개의 탑'에서 간달프는 마법사 사루만에게 패해 아이센가드 꼭대기에 감금된다.

상상력이 바닥난 것일까? '호빗'에 등장하는 미녀 요정 타우리엘은 '반지'에 등장하는 미녀 요정 아르웬과 겹친다. 타우리엘은 동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난쟁이 용사 킬리를 사랑하게 되고, 아르웬 역시 동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인간 용사 아라곤과 사랑에 빠진다.

타우리엘은 요정의 의술로 죽어가는 킬리를 살린다. 아르웬이 요정의 의술로 죽어가는 프로도를 살리는 것과 같은 설정이다.

'반지'에 등장했던 흉칙한 거미 실롭도 그렇다. 자동차만한 덩치에 쳐다보기도 징그러운 이 대형 거미는 프로도를 공격하려다, 샘의 칼을 맞고 쓰러진다. 똑같이 생긴 거미가 호빗에도 등장한다. 여기서 주인공 빌보는 똑같이 생긴 왕거미를 칼로 찌른 뒤, 동료들을 구해낸다.

영화 '반지의 제왕'을 영원히 기억하게 만든 장치 중 하나는 '엄청난 스케일'이다. 수십만의 오크 군단과 인간 대군이 정면충돌하는 전쟁 장면은, 중국판 삼국지에서도 볼 수 없는 초대형 스펙터클이다. 컴퓨터 그래픽의 도움 없이는 도저히 만들 수 없다는 이런 '엄청난 스케일'은 아쉽게도 호빗에선 찾아볼 수 없다.

그래도 충분히 재미있다. 거세게 몰아치는 급류를 포도주 통을 타고 떠내려가며 펼치는 전투장면은 곡마단 곡예를 연상시킬 만큼 흥미롭고, 해변 백사장처럼 펼쳐진 보물더미에 숨겼던 몸을 드래곤 스마우그가 서서히 드러내는 장면은 '아름답다'는 표현을 써도 좋을만큼 유연하다.

애시당초 '반지'처럼 엄청난 영화가 또 나오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니 이정도 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진한 아쉬움이 남는 것은 왜일까.

아마도 드래곤 스마우그가 복수를 외치며, 밤하늘을 날아오르는 장면 때문일 것이다.

이제부터 뭔가 한바탕 와장창 벌어지나보다~ 하고 손에 땀을 쥐는 순간, 영화는 덧없이 끝나버린다.

영화가 무슨 인생도 아니고, 이렇게 허무할 수가 있나 싶은 순간, 객석엔 불이 들어온다. 빨리 나가서 내년에 상영될 3부를 기다리고 있으란 얘긴가? 화장실에서 볼일 보다 중간에 뚝 끊긴 것처럼 찝찝하기 짝이 없는 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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