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남(南)수단에 파견된 한국 평화유지군(PKO)이 최근 현지에서 일본 자위대로부터 소총탄 1만발을 공급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은 올 3월 남수단에 공병부대 210여명과 경호 병력 70여명을 파견했다. 일본 자위대 역시 공병대 위주로 구성된 320여명의 평화유지군을 파견했다. 한국과 일본은 병력 구성·부대 규모에선 별 차이가 없다. 한국군은 '개인 휴대'가 가능한 수준의 실탄만 공급한 반면 일본 자위대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여분의 실탄과 화기를 갖춘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5일부터 남수단의 현직 대통령과 전직 부통령이 각각 이끄는 종족 분쟁이 내전(內戰)으로 번지면서 유엔 평화유지군의 안전까지 위협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난 7월 현 대통령이 부통령을 해임할 때부터 어느 정도 예견됐던 일이다. 그렇다면 10월 현지에 도착해 임무 교대를 한 한국군 2진은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 수준의 무장을 갖추도록 했어야 했다. 그런데도 우리 군 지휘부는 파병의 기초 작업인 현지 정세 분석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한국군은 당초 현지 유엔군(UNMISS)에 실탄 지원을 요청했다고 한다. 남수단 파병 11개국 중 한국군이 쓰는 5.56㎜ 구경 실탄을 보유한 나라는 미국과 일본밖에 없어 유엔군이 중간에 나서 미군과 자위대로부터 실탄을 확보해 한국군에 제공했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현지 부대장의 판단을 존중해 국방부 차원에서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일본은 한국의 요청이 있자마자 아베 총리 주재로 관계장관 회의를 열었고, 곧바로 관방장관이 기자회견을 통해 실탄 제공 사실을 발표했다. 일본 언론들은 이 일을 대서특필했고, 일각에선 아베 정권이 추진해 온 '집단적 자위권'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첫 사례라는 평가까지 내놨다.

일본은 총리가 직접 회의를 주재하는데 한국은 어떻게 현지 부대장 제안에 따라 국방부 단독으로 이런 중대 결정을 내렸다는 것인지 도무지 믿기 어렵다. 정부 내 어디에서도 이번 결정이 불러올 외교적 파장에 대한 검토와 고민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이럴 바에는 왜 매주 외교안보 관계장관 회의를 갖는 것이며, 청와대에 NSC 사무처를 신설할 이유가 무엇인가.

일본이 이번 일을 한국이 아베 정권의 '적극적 평화주의'에 다가선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억지이고 무리다. 그러나 일본이 이런 주장을 펼 빌미를 제공한 우리 국방부와 군의 무능(無能), 이 정부 외교안보 정책 결정 과정의 문제점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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