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아 솟아라

조선일보
  • 김미리 기자
    입력 2013.12.13 03:04 | 수정 2013.12.13 10:15

    그래픽 디자이너 박금준, '한글 달력' 제작·전시

    돋을볕, 맘매김, 도담도담…. 왠지 혀에 착착 감기지 않는 이 말들, 알고 보면 뜻 고운 순도 100% 우리말이다. 돋을볕은 '해돋이 무렵 처음으로 솟아오르는 햇볕'을, 맘매김은 '약속'을, 도담도담은 '아이가 잘 자라는 모양'을 일컫는다.

    이 단어들을 찾아내느라, 그래픽 디자이너 박금준(50·601비상 대표)은 몇 달간 두꺼운 국어사전을 끼고 살았다. 사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일년 열두 달을 상징할 만한 예쁜 우리말 열두 개를 뽑아냈다. 그 단어들의 음운을 하나씩 뜯어내고 색다르게 뭉쳐 달력 한 장마다 찍어 넣었다. 이런 '한글 달력'을 만들어온 지 올해로 3년째.

    "두 달 동안 하루 15시간씩 쏟아부어 한글에 표정을 입혔어요. 까만 색종이를 잘게 잘라 수천 번 글씨를 만들어 봤습니다. 그 결실을 달력이라는 '일상의 캔버스'에 담은 거죠." 12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박금준이 갓난아기 다루듯 조심스레 달력을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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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은 한글을 찾아보세요.” 디자이너 박금준이 ‘돋을볕’이라는 순 우리말을 활용해 만든 2014년 1월 달력을 들고 있다. /이준헌 기자
    한글전을 여는 박금준 그래픽디자이너. “두 달 동안 하루 15시간씩 쏟아부어 한글에 표정을 입혔어요. 까만 색종이를 잘게 잘라 수천 번 글씨를 만들어 봤습니다. 그 결실을 달력이라는 ‘일상의 캔버스’에 담은 거죠.” /이준헌 기자
    박금준은 한국을 대표하는 그래픽 디자이너 중 하나. 여수세계박람회 포스터,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홍보물 등을 디자인했다. 세계 3대 디자인상으로 꼽히는 독일 레드닷(Red dot)상을 19차례 받았다. 한국인 최다 수상이다.

    지천명(知天命)의 이 베테랑 디자이너가 한글 작업을 천명(天命)으로 받아들이게 된 건 3년 전 한 시상식에서 맞닥뜨린 충격 때문이었다. 그해 홍콩 DFA상(Design for Asia Award) 대상을 받았는데 시상을 맡았던 네덜란드 그래픽 디자이너 미셸 드 보어(Boer)가 그에게 물었단다. "한국 사람인데 왜 영어 작업을 주로 하죠? 난 한글이 참 예쁘던데." 그때부터 한글 텍스트(text)에 질감(texture)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그의 한글은 팔딱팔딱 살아 숨쉰다. 내년 달력 1월의 단어 '돋을볕'은 '이응(ㅇ)'을 크게 표현해 수평선에서 붉은 해가 막 솟구쳐 오르는 듯한 역동감을 줬다. 박금준의 '숨 쉬는 한글'이 달력 밖으로 뛰쳐나와 일반 관람객을 찾아간다. 2014년 신년 달력 속 그래픽 작업과 이를 입체화한 조형 작품까지 모은 한글전 '한말글 변주곡'이 서울 잠원동 '앤갤러리'에서 내년 2월 8일까지 열린다. (02)515-7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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