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혈압이 있던 중년 여성이 여름철 수박을 먹다가 정신을 잃고(394회), 건강을 위해 매일 꿀을 떠먹던 청년이 다음 날 초주검으로 발견된다.(398회) 배변 후 변기 뚜껑을 안닫고 물을 내려서, 조개껍데기에 베여서, 오징어회를 먹다가 쓰러지고 급기야 죽기까지 한다. 코미디 영화가 아니다. 2005년부터 꾸준히 8~10% 시청률을 올리며 장수하는 국내 유일 ‘안전 버라이어티’ KBS ‘위기탈출 넘버원’의 재연 장면들이다.
재연 코너에서 걸핏하면 출연진이 죽어나가는 설정 탓에 포털사이트에 가장 먼저 뜨는 연관검색어는 '무리수', 별명은 '이승탈출 넘버원'이다. 이 프로의 유명세는 '개그콘서트'나 tvN 'SNL코리아' 등에 나오는 숱한 패러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11년부터 이 프로를 맡아온 정미영 PD는 "'연기자들이 대본에서 자꾸 황당무계하게 죽는다'는 이유로 지난 7월 사내 'TV비평 시청자데스크'에도 출연했다"며 "'저 정도로 죽어?'라는 반응이 많지만, 이런 죽음도 엄연한 현실"이라고 말했다. "압축해서 보여줘야 하는 방송의 특성상 사망이 갑작스럽게 느껴질 수 있죠. 인간이 나약한 존재인 만큼 죽음은 도처에 있습니다."
꿀을 장기간 복용하면 당뇨 등 여러 대사증후군으로 사망 확률이 높아져, 생후 12개월 미만 영아에겐 절대 꿀을 먹여선 안 된다. 오징어를 날것으로 먹으면 오징어 기생충이 위벽을 뚫고 다른 장기에서 번식할 위험이 크다. 약으로도 안 죽어 내시경 집게로 하나하나 집어 빼내야 한다. 피자를 먹다 졸도하는 내용이 담긴 410회는 정 PD가 꼽은 가장 황당한 에피소드. "'치즈증후군'이라는 용어가 있어요. 치즈나 피클 같은 음식에 '티라민'이라는 성분이 많은데, 과다 섭취 시 부정맥이 생겨 운이 없으면 죽을 수도 있죠." 정 PD는 "이 프로 오래 하면 못 먹는 게 많이 생긴다"고 털어놨다.
제작진은 병원 응급실, 각종 동호회 등을 뒤져 숱한 사망·부상 사고 환자를 만나 아이템을 찾는다. 사방이 위험한 것 투성이니 이쯤 되면 '걱정 증후군'을 염려해도 될 판. 제작진의 입장은 단호하다. "알고 걱정하는 게 모르고 당하는 것보다 낫다"는 것. 15명 제작진 전원이 심폐소생술 자격증을 갖고 있을 정도다.
결국 이 프로가 가르치는 건 '살아남는 법'이다. 정 PD가 "자동차가 물에 빠져 잠겼을 때 탈출하는 방법이 뭔지 아느냐"고 물었다. 정답은 물이 차 문이 80% 정도 잠겼을 때 문을 여는 거다. "차 문 안팎의 수압이 같아질 때까지 기다리는 거예요. 의자 목받이를 빼서 유리창을 깨도 되고요."
“전 국민이 장수하는 그날까지 프로를 만들겠다”는 정 PD는 당부하듯 겨울철 ‘위기탈출’ 방법을 일러줬다. “혹시 화가 난 멧돼지를 만나거든 지그재그로 도망치세요. 네발짐승은 회전력이 약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