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가 밝힌 장성택 전 행정부장의 죄목은 무려 20가지에 이른다. 가장 큰 죄목은 '반당(反黨) 반혁명 종파 행위'였다. 노동신문은 "(장성택이) 당의 유일적 영도를 거세하려 들면서 분파 책동으로 자기 세력을 확장하고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의 명령에 불복했다"고 했다. 또 동상이몽(同床異夢)과 양봉음위(陽奉陰違·앞에서는 순종하는 체하며 속으론 딴마음을 먹음)를 하고, 자기 환상을 조성하고 배신행위를 했다는 표현도 썼다. 경제적 부정부패와 사생활 문란 혐의도 있었다. 이 같은 혐의들은 권력 입맛에 따라 조작·윤색됐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김정은 1인 체제에 도전했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장성택 개인의 실각을 넘어서서 장성택 주변 세력에 대한 대대적 숙청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장성택 라인 뿌리까지 숙청될 듯
이번 장성택 체포와 숙청 작업은 김정은 유일 영도 체제로 가는 데에 장성택 세력이 위협이 될 정도로 커졌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장성택은 군부가 갖고 있던 외화 벌이 등 이권 사업을 뺏고 당과 내각의 요직과 돈줄을 장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장성택 세력이 김정은 체제를 비판했거나 핵심 노선에 반기를 들었을 수 있다. 장성택은 김정은이 참석한 행사에서 주머니에 손을 넣거나 삐딱하게 앉는 등 불손하게 비칠 만한 행동을 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수차례 경고도 하고 타격도 줬지만 응하지 않아 제거했다"고 했다.
그러나 장성택이 실제로 김정은에 대한 모반 행위를 했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조영기 고려대 교수는 "김정은 1인 체제에서 장성택이 노골적으로 김정은에 맞서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다만 장성택은 황금평과 나진·선봉 중심의 경제개발을 주장한 반면 김정은은 14개 지역 특구 균형 개발에 무게를 뒀기 때문에 이를 놓고 갈등을 빚었을 수 있다"고 했다.
장성택에게 밀려났던 군부가 김정은을 설득해 장성택에게 반당 종파 혐의를 씌워 쳐낸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장성택을 밀어내려는 군부가 김정은을 회유해 가상 죄명을 씌운 것 같다"고 했다.
북한 전문가들은 "이런 죄목이라면 장성택은 재기가 불가능하며, 가족·친척·측근 등 그 뿌리까지 줄줄이 숙청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광범위한 인적 청산 이후 김정은 유일 체제로 빠르게 전환될 것"이라고 했다.
◇경제 실패 책임까지 전가
장성택의 죄목에는 "사법검찰, 인민 보안 기관에 대한 당적 지도를 약화시켰다"는 부분도 있다. 노동당이 관할하는 법원·검찰·경찰이 장성택에 의해 좌지우지됐다는 것이다.
조선중앙통신은 또 "(장성택이) 국가 재정 관리 체계를 혼란에 빠뜨리고 귀중한 자원을 헐값으로 팔아 버리는 매국 행위를 함으로써 주체철과 주체비료, 주체비날론 공업을 발전시킬 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과 어버이 장군님의 유훈을 관철할 수 없게 했다"고 했다. 북한 전문가들은 "'인민들을 등쳐 자기 배를 불렸다'는 혐의를 적용한 것"이라고 했다. 경제개발이 뜻대로 안 되자 '헐값 매각을 통해 이권을 챙겼다'며 장성택에게 책임을 돌렸다는 것이다.
통신은 '타락한 사생활'도 열거했다. "장성택이 자본주의 생활양식에 물젖어 부정부패 행위를 감행하고 부화타락한 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부정부패와 여성 관계, 술놀이와 먹자판, 외화 탕진과 도박 등도 거론됐다. 한 전문가는 "장성택의 부도덕성을 조작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