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 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회담에서 '이란 핵협상' 모델을 북핵 문제에 적용하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사회가 합심해서 '초강력 제재'를 가해 결국 이란이 전향적인 자세로 협상 테이블로 나올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듯이, 북한에 대한 압박 수위를 더욱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바이든 부통령의 동북아 순방 일정을 수행 중인 백악관 고위 당국자는 4일(현지 시각) 바이든·시진핑 회담이 끝난 뒤 현지에서 가진 브리핑에서 "두 차례 회담과 만찬 등 5시간 30분간 이어진 이날 만남에서 상당한 시간이 '북한'에 할애됐다"고 전했다.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선포로 촉발된 역내 긴장 고조로 북핵 문제가 뒷전에 밀렸다'는 일각의 우려를 부인한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이 5일 경기 평택시 오산 미 공군기지에 도착해 비행기에서 내려오며 손녀와 함께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

이 당국자는 특히 "시 주석과 바이든 부통령은 최근 이란과 P5+1 (유엔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과 독일) 간 핵협상 잠정 합의를 거론하면서 이를 북한 핵문제 해결에 적용하는 방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고 말했다. '압박'과 '대화', '국제사회의 단합'이 이란 핵협상의 타결을 이끌어냈다는 인식하에 이런 처방을 북한 문제에 같이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이든 부통령과 시 주석은 '대화를 위한 대화'는 안 되며 실질적인 결론을 도출해야 하고, 북한의 선택을 압박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 등에 대해 상당 부분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은 "이란 핵협상을 북핵 협상에 적용한다는 것은 결국 바이든이 시진핑에게 '북한이 진정한 핵포기 의사를 갖고 대화에 나올 수 있도록 중국이 더 압력을 가해달라. 그러면 미국은 이란에 했던 것처럼 적극적인 대화와 개입으로 해결점을 찾겠다'는 제안을 한 것"이라고 했다. 우선적인 방점은 '압박 강화'에 있다는 얘기다.

이란 핵문제는 10여년간 해결 실마리를 찾지 못했으나, 이란이 최근 몇년간 지속된 국제사회의 유례없는 고강도 제재를 견디다 못해 협상에 적극 나서면서 극적으로 타결됐다. 이란이 전향적인 입장을 보이면서 미국은 공식협상 외에 물밑 양자 접촉을 수차례 진행하는 등 적극적인 개입에 나섰다. 다른 소식통은 "이란 핵협상에선 이란의 동맹인 러시아가 압박에 동참한 것이 큰 역할을 했다"며 "바이든은 북핵 문제에서 중국이 이 같은 역할을 맡아달라고 요청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날 회담에서는 북한의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의 실각설에 대해서도 장시간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백악관 당국자는 "바이든 부통령과 시 주석은 최근 며칠간 나왔던 언론보도들과 관련해 북한의 내부 상황을 점검했다"고 했다. 백악관은 사안의 민감성을 감안해 구체적인 대화 내용을 밝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뉴욕타임스(NYT)는 "장 부위원장의 실각설에 대한 양국의 정보를 교환하면서, 이 문제가 향후 김정은 체제와 북핵 협상 등 한반도 상황에 미칠 영향을 종합적으로 논의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한편 중국 권력 서열 3위인 장더장 전인대 상무위원장은 5일 중국을 방문 중인 강창희 국회의장을 만난 자리에서 "북한의 핵개발에 단호히 반대한다"며 "핵문제는 냉전시대의 산물로 북한과 미국 사이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한·중·일·러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에 6자 회담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