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택, 2002년 측근 총살 등 모두 4번 숙청됐으나 다 부활했다"

  • 조선닷컴
    입력 2013.12.04 15:10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고모부로서 실각설(失脚說)이 나도는 장성택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김정일 시절 두차례 숙청 외에 지금까지 모두 네차례나 숙청당했으며 그 때마다 모두 되살아난 전력(前歷)을 갖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최근 장성택의 실각은 김정은 유일(唯一)지배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한 ‘공포 정치’의 희생양일 뿐일 수도 있다고 인터넷 매체인 ‘데일리안’이 4일 밝혔다.

    이 매체에 따르면 함경북도 청진이 고향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장성택(1946년생)은 김일성종합대학 정치경제학부에 입학해 동급생인 김경희와 교제를 시작했다.

    김경희가 장성택의 훤칠한 외모와 유려한 말솜씨에 반해 먼저 구애(求愛)했다고 한다. 하지만 김일성이 교제를 반대해 장성택을 원산 농과대학으로 쫓아낸 적이 있고 이 사건이 ‘첫 번째 숙청’이다.

    이후 장성택은 1972년 김경희와 결혼해 김일성의 사위가 됐고 출세 가도를 달렸다.

    그러던 중 장성택은 1978년 동평양 외교초대소에서 일주일에 한번씩 측근들과 파티를 벌이다 보위부에 적발됐다. 당시 “너(장성택)가 뭔데 내 흉내를 내느냐”는 김정일의 불호령으로 장성택은 강선제강소 작업반장으로 쫓겨났다.

    하지만 장성택은 1986년 우리나라의 국회의원에 해당하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1988년 노동당 청소년사업부장을 맡으며 승승장구했다. 그가 본격 실세(實勢)가 된 것은 1989년 평양세계청년학생축전 전후로 분석된다고 데일리안은 밝혔다.

    당시 평양 재건설 사업을 맡았던 장성택은 기일 내 공사를 성공적으로 마쳤고, 이에 김정일은 그를 ‘노력영웅’이라고 칭하며 3대혁명소조부장(1989년),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1995년) 등으로 중용했다. 다른 형제 2명인 장성우, 장성길도 함께 승진했다. 당조직지도부 1부부장은 노동당 내에서도 가장 핵심으로 꼽히는 자리이다.

    하지만 장성택은 2002년 4월에 모든 직무에서 해임되고 그 측근이던 보안성 35국장이 총살(銃殺)로 처형당하는 사건에 휘말렸다.

    김정일이 2002년 4월 서기실(書記室) 가족담당서기를 자신의 송도초대소에 몸보신시키려 보냈다가 당시 경비부서이던 ‘인민보안성 35국’에서 서기 일가족을 통과시키지 않았다는 게 발단이었다.

    장성택은 그때 ‘인민보안성 35국’을 관할하고 있었는데, 장성택은 모든 직무에서 해임됐고 그의 측근인 ‘인민보안성 35국’ 국장은 총살당했다. 35국에서 근무하던 전 보안원과 심지어 하전사들까지 100% 해임되는 대소동이 벌어졌다고 데일리안은 전했다. 이것이 세번째 숙청이었다.

    장성택은 이어 2004년 초에도 측근의 호화 결혼식에 참석한 것이 발각되면서 ‘분파(分派) 조장’ 혐의로 실각했고, 당시 측근들까지 모두 좌천당했다. 이 사건은 당시 중앙당 조직부 1부부장 겸 본 부당 책임비서였던 리제강의 견제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장성택은 그러나 2006년 당 제1부부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하면서 2007년 당 행정부장으로 승진하면서 권부(權府)의 핵심에 다시 들어왔다.

    대북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김정일이 말년으로 갈수록 친척들과 ‘혁명 2세대(김일성 측근 후손)’를 중용하는 경향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장성택이 복권(復權)된 이후인 2010년 6월, 장성택을 견제하던 리제강이 평양-원산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은 ‘암살 의혹’이 농후하다는 관측이다.

    이런 장성택 특유의 인생 역정을 감안할 때, 김정은 집권후 ‘2인자’로까지 불렸던 장성택의 실각설에 대해선 부패 문제 등으로 인한 ‘재기(再起) 불가능한 완전 숙청’이라는 분석과 동시에 ‘그의 신변에는 특별한 이상(異常)이 없으며 언젠가 다시 공식 무대에 복귀할 것’이란 견해가 맞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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