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실각(失脚) 가능성이 제기된 장성택(67)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은 김정은 정권의 '후견인'으로 인식돼왔다. 김정일 생존 당시 김정남 등과의 후계자 경쟁 과정에서 김정은을 지지했던 그는 권력 승계 과정을 막후에서 관리했다.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 사망으로 김정은이 집권한 후에는 제2의 권력자로 역할을 해왔다. 정치적으로는 '온건파', 경제적으로는 '개혁·개방파'의 대표 격으로 군부 강경파보다 상대적으로 유연한 인물로 평가돼왔다.
◇2년 만에 '최대 조력자'에서 '최대 걸림돌'로
장성택의 전성기는 2012년이었다. 김정일 사망 직후인 작년 1월 김정은은 당의 주요 간부들에게 장성택을 "누구보다 가까운 혁명동지"라고 소개했다. 북한 소식통들 사이에서는 "장성택은 김정은에게 보고되는 주요 문건을 공유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작년 7월 북한 군부 1인자였던 리영호 총참모장이 숙청됐을 때는 "이제 장성택의 나라가 됐다" "사실상 김정은과 장성택의 공동정권"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작년 8월 방중 시에는 국가원수들이 묵는 댜오위타이(釣魚臺)에 머물며 국빈급 대접을 받았다. 당시 우리 정부 관계자는 "장성택 방중 전 선발대가 10여명 들어갔는데, 김정일을 제외한 다른 인사의 외국 방문에 선발대가 나간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장성택은 지난해 김정은의 공개 활동 150여회 중 106회를 수행하며 최측근으로서의 위상을 과시했다.
이런 장성택의 위상에 이상 징후가 보인 것은 작년 말부터였다는 분석도 나온다. 북한 소식통은 "장성택이 작년 11월 국가체육지도위원장으로 임명되면서 이미 당 행정부장직에서 물러났으며, 이후 외화벌이와 체육 관련 활동에만 관여해온 것으로 안다"고 했다. 노동당 행정부는 당의 인사 및 감찰권과 국가안전보위부, 인민보안부, 검찰소, 재판소 등 사법기관들을 지도·통제하는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다. 장성택에게 권력이 너무 집중되자 김정은이 견제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김경희가 먼저 求愛해 결혼
장성택은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나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했다. 1972년 김정일의 동생 김경희와 결혼하면서 출세 가도를 달렸다. 김경희가 장성택의 훤칠한 외모와 유려한 말솜씨에 반해 먼저 구애(求愛)했다고 한다. 장성택은 1986년 우리나라의 국회의원에 해당하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1988년 노동당 청소년사업부장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권력 핵심에 진입했다. 1995년 노동당 내에서도 가장 핵심으로 꼽히는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을 맡으며 승승장구했다.
이 때문에 자신의 처남인 김정일로부터도 견제를 받았다. 장성택은 2004년 측근의 호화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파벌 조성' 혐의로 숙청됐으나 3년 만에 북한의 사정·감찰기관을 책임지는 노동당 행정부장으로 '부활'했다. 이런 이유로 일부 전문가 사이에서는 이번에도 장성택이 완전히 실각한 것이 아니라 언제든 재기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김정은의 고모인) 김경희와의 관계 등을 고려할 때 장성택이 완전히 실각했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좀 더 두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