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청년 백수'들의 인기 구직 사이트 한 곳에는 '일자리 구함. 60대'란 글이 올랐다. 본지는 이 글을 올린 사람을 수소문했고, 한참 후 연락이 닿았다. 그는 올해 갓 신중년 세대에 진입한 김모(60)씨였다. 본지는 신중년의 취업난을 확인하기 위해 김씨의 양해를 구해 3주일 동안 그의 구직 활동을 추적 취재했다.

"오늘도 허탕이네요."

김씨의 하루는 인터넷 구직 사이트를 뒤지는 것으로 시작됐다. 명문 사립대 화학공학과를 나와 외국계 회사에서 해외 기술영업 담당으로 임원까지 했다. 체력도 좋다. 10년 전 마라톤을 시작해 몇 번이나 42.195㎞를 완주했다. 그런데 오늘도 뽑아주겠다고 연락이 온 곳은 전혀 없다.

신중년 구직자 김모씨가 서울 중구 신당5동 대한노인회 사무실에서 구직 서류를 작성하고 있다. 김씨는 “일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는데도 나이 들었다는 이유로 일자리를 구하는 게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지난 7월 재취업 전선에 처음 뛰어들 때만 해도 김씨는 그럴싸한 직장이 곧 불러줄 것으로 알았다. 착각이었다. 연락이 온 곳은 다단계 회사 4곳, 보험 영업 회사 5곳이 전부였다. 김씨는 "연락이 온 곳은 내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피해를 줄 가능성이 있는 회사들뿐이었다"고 했다.

동행 취재 초기 일주일 동안 김씨는 노인 일자리 알선 기관 11곳을 방문했고, 20여곳에 전화를 돌렸다. 월요일 오전 처음 찾은 곳은 고용노동부 산하에 있는 서울 마포의 서부고용지원센터. "기술영업·무역 쪽과 조금이라도 비슷한 일은 없는 것이냐"고 묻자 "고령자는 경비·미화 쪽 말고는 거의 안 나온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튿날 서대문 고령자 취업알선센터. "경비 쪽도 근무 여건이 좋은 곳은 석박사급이 몰릴 정도로 인기"라는 말을 들었다.

김씨는 많은 월급을 바라는 게 아니다. 희망 급여는 월 100만원. 하지만 3주일 동안 그는 결국 일자리를 찾지 못했다.

이처럼 많은 신중년들은 충분히 건강하고, 누구보다 일을 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상당수 신중년들이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

본지가 한국고용정보원에 의뢰해 1938년부터 1953년 사이 태어난 신중년 351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 중 2.3%만이 일상생활에 불편을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다. 건강 유지에 대한 자신감도 있어서 60대 후반의 절반 이상(56.5%)과 70대 초반의 절반 가까이(49.7%)가 각각 80세와 85세까지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답했다.

신중년들은 높은 보수를 주는 일자리를 바라지 않는다. 적절한 월급으로 70.1%가 100만원 이하를 지목했다. 또 신중년의 56.5%는 '시간제' 일자리를 원했다.

신중년의 눈높이가 높지 않음에도 좀처럼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데는 이들을 뽑는 기업들이 신중년에 대해 지니고 있는 고정관념과 연공서열 문화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취업 포털 사이트 '사람인'이 최근 기업 인사 담당자 363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5.8%가 "나이가 많은 지원자를 탈락시킨 적이 있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 '상사 등 직원들이 불편해 할까 봐'(62.4%·복수 응답), '위계질서가 흐트러질 것 같아서'(24.7%), '입사 동기들이 어색해할 것 같아서'(14.5%) 등이 꼽혔다.

지역 중소기업 CEO들을 대상으로 정기적으로 노인 취업 설명회를 열고 있는 인천의 부평인력개발센터 최화자 센터장은 "중소기업 10곳 중 5곳은 신중년에게는 면접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며 "많은 CEO들이 조직 문화 혼란을 걱정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런 상황이면 답이 나와 있다. 나이에 상관없이 적재적소에서 일을 하고 일한 만큼 월급을 받는 연공서열의 타파이다. 그러면 신중년을 다시 채용하는 데 주저할 이유가 없다. 김진영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단지 나이 때문에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져선 안 된다"며 "정부가 나서서 신중년이 일할 수 있는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직업을 소개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