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다섯 개의 눈(Five Eyes)'으로 불리는 영미권 첩보 동맹국(미국·호주·영국·캐나다·뉴질랜드)의 도·감청 활동을 지원하는 핵심 역할을 해왔다고 호주 일간 시드니모닝헤럴드가 25일 보도했다. '다섯 개의 눈' 정보기관이 환태평양 지역에 설치된 해저 광케이블을 이용해 중국 등 아시아 국가의 국제통화와 인터넷 접속 내용을 도청하거나 감시하는 것을 도왔다는 것이다.

전 미국 중앙정보국(CIA)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이 폭로한 문건에 따르면, 미국 등 5개 첩보 동맹국은 각국 정부나 통신 회사 등과 협조해 세계 20개 지역에서 해저 광케이블을 통해 정보를 빼냈다. 이 중에서 미국은 중국을 감시하는 데 부산의 해저 통신망을 거점으로 활용했다고 한다. 부산을 통해 해저로 이어진 광케이블이 중국·홍콩·대만까지 뻗어 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일간지 'NRC 한델스블라트'가 스노든의 자료를 받아 지난 23일 공개한 미 국가안보국(NSA)의 정보 수집 네트워크 지도에도 해저 광케이블 거점이 한국을 포함해 20곳이 나와 있다. 이와 관련, 국내 통신 업계 관계자는 "부산을 거쳐 중국까지 이어지는 해저 광케이블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보도 내용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고 말했다.

미 중앙정보국(CIA) 전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이 공개한 미 국가안보국(NSA)의 정보수집 네트워크 지도. 파란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해저 광케이블 거점이다. 나머지 부분은 다른 정보 수집 거점이다.

싱가포르도 '다섯 개의 눈'의 도·감청 활동을 도왔다. 싱가포르는 오래전부터 호주 정보기관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했다.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를 비롯해 대부분의 동남아 국가를 오가는 해저 통신망은 싱가포르를 거쳐간다. 싱가포르를 지나는 해저 광케이블은 국영 통신 회사인 싱텔이 관리하기 때문에 싱가포르 정보 당국의 접근이 용이하다. 이 때문에 '다섯 개의 눈' 정보기관들은 동남아를 포함한 환태평양 지역의 주요 도청 허브로 싱가포르를 활용했다고 시드니모닝헤럴드가 전했다. 싱가포르를 경유하는 일부 해저 통신망은 프랑스·독일까지 이어져 도청 활동이 더 광범위하게 벌어졌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시드니모닝헤럴드는 이 밖에도 NSA와 영국 정보통신본부(GCHQ)가 지부티와 오만의 미군 기지를 활용, 중동 지역으로 통하는 해저 광케이블에 접속해 도청 활동을 벌였다고 전했다. 또 미국은 자국의 서부 해안과 하와이, 괌 등에 설치한 도청 기지를 활용해 환태평양 지역을 오가는 모든 통신망을 감시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6년 미국과 영국은 정보 공유 협약을 맺었다. 이후 캐나다·호주·뉴질랜드 등 영연방 3개국이 가세해 정보 감시 활동의 결과물을 공유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