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자신의 단골 한식당인 ‘가레아’ 도쿄 야키니쿠점에서 직접 집게를 들고 갈비와 우설, 곱창을 굽고 있다. 그는 한국 불고기를 모태로 한 불판구이 ‘야키니쿠’ 마니아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단골 한식당에서 방송 인터뷰를 가진 것은 한국을 고려한 의도된 행동이었을까?

지난달 23일 아베 총리는 일본 위성방송 BS아사히와의 인터뷰를 '가레아(可禮亞)'라는 도쿄 야키니쿠(燒肉)점에서 진행했다. 야키니쿠는 한국 불고기를 모태로 재일교포가 보급한 불판구이. 이제는 일본의 국민식(食)으로 뿌리를 내렸지만 상당수 일본인들에게 여전히 '한식(韓食)'으로 인식된다. 아베 총리가 찾은 식당은 특히 내부가 한국의 전통가옥 모습을 한 곳이고, 식당의 이름 '可禮亞'는 중국에서 '코리아'를 표기할 때 사용하는 한자다. 이날 아베 총리가 주문한 메뉴는 갈비, 우설, 곱창, 그리고 막걸리.

아베 총리의 인터넷 프로필을 보면 '가장 좋아하는 음식' 항목에 '야키니쿠'라고 적혀있다. 작년 12월 보수 언론인 산케이신문과의 인터뷰 역시 같은 한식당에서 진행됐다. 두 인터뷰 모두 한·일 관계나 동북아 외교에 특별한 방점을 두지 않았다. 따라서 국내 언론은 의미를 두지 않고 가십성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한·일 관계를 잘 아는 한 일본인은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거꾸로 박근혜 대통령이 일식당에서 인터뷰를 했다고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 "말하자면 '야키니쿠 외교'"라는 것이다.

'야키니쿠 외교'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실패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2001년 취임 직후 고이즈미 총리가 "난 기무치(김치)가 싫다"라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한국 언론에 보도됐다. 이후 야스쿠니신사 참배까지 이어지면서 한·일 간에 회복 불능의 거리감이 생겼다는 게 일본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기무치만이 아니라 다쿠앙 등 절임 음식 전체를 안 먹는다는 뜻"이라고 변명했지만 소용없었다. 이때 한국을 방문한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민주당(당시 야당) 대표가 공식 석상에서 "난 기무치가 좋다"고 말한 것도 정적(政敵)의 실언을 조롱한 것이었다. 그 후 총리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산케이신문은 "대통령과의 만찬 석상에서 기무치를 먹으면서 꼭 '본고장의 기무치는 다르네, 맛있어' 하고 말하기 바란다"라고 주문했다. 실제로 고이즈미는 만찬장에서 김치를 먹었다고 한다. 하지만 찬사까지 쏟아내지는 못했다.

고이즈미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은 첫 총리가 후임 아베 총리(2007년 1기 재임 시기를 말함)였다. 총리 부인 아키에 여사는 겨울연가에 나온 고(故) 박용하의 팬이었다. 2005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골프장에서 남편과 박용하와 함께 찍은 기념사진을 남편 부분만 오려내고 액자에 넣어 세워놓았다는 일화가 화제를 모았다. 2007년 방한했을 때엔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유창한 한국어로 동시를 읽어 친한(親韓)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당시 일본 정부는 아키에 여사에게 한류 전문가를 붙여 특별 교육을 시켰다. 정부 차원의 연출이었던 것이다.

'야키니쿠 외교'의 정수를 보여준 것은 2009년 민주당 정권의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였다. 하토야마 총리는 물론, 부인 미유키 여사도 한류, 특히 드라마 '이산'에서 조선의 임금 정조(正祖) 역할을 한 이서진의 팬이었다. 그는 총리 취임 직전 탤런트 이서진을 일본에 불러 "정조처럼 정치하겠다"고 말해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화제를 모았다. 하토야마 시대는 2000년대 이후 한·일 관계가 가장 좋았던 시대로 평가된다.

일본 외교가의 한 인사는 "총리의 의도적인 행동이 역사나 영토와 같은 현안을 희석시킨 일은 없지만, 갈등이 소강상태를 보일 때 감정의 고리를 연결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이런 점을 일본 정부는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