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공간이 어떤 공간인데 부동산 경매 매물로 회자되다니요. 공간 사옥은 우리 건축의 자존심입니다. 우리 문화의 성지(聖地)입니다. 건축박물관으로 만들어 보전해야지요."

서울 종로구 원서동 219번지 창덕궁과 계동 현대그룹 사옥 사이, '근대'와 '현대'를 잇는 길목에 담쟁이를 두른 채 '공간 사옥'이 서 있다. 12일 그 앞에서 건축가 승효상(61·이로재 대표)이 절박하게 말했다. 그는 "공간 사옥이 민간에 넘겨지면 개발 논리에 따라 건물을 부수고 훼손할 게 뻔하다"며 "지난 시대 우리의 '문화 생산지'였던 이 건축물을 공공의 장소로 변환시키자"고 제안했다. 매각 위기에 처한 공간 사옥을 구하기 위해 '김수근 사단'의 좌장 격인 승효상이 팔을 걷어붙였다.

서울 원서동 공간 사옥 앞. 건축가 승효상의 목소리가 커졌다.“ 우리 문화의 자존심이 부동산으로 팔리다니 말이 됩니까.”그는“공간을 반드시 건축박물관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공간 사옥은 승효상의 스승이자 한국 현대건축의 선구자인 김수근(1931~1986)이 1971년 혼을 부어 설계한 건축물이다. "건축은 어머니의 자궁(子宮)처럼 창조적이어야 한다"는 신념을 반영해 모호하고 독창적인 공간으로 만들었다. 건축법상으론 지하 1층, 지상 4층이지만 실제로는 높이가 다른 20여개의 방이 문(門)도 없고 층간(層間) 구분도 분명치 않게 미로처럼 연결된 독특한 구조다. 이 때문에 한국 현대건축의 걸작을 꼽는 설문에서 늘 수위(首位)를 다투는 '작품'이다. 서울 장충동 '경동교회', 동숭동 '문예회관', 잠실 '서울올림픽주경기장' 같은 김수근의 걸작이 잉태된 한국 현대건축의 산실(産室)이기도 하다. 게다가 소극장과 커피숍을 갖춰 당대 문화 인사들이 아지트처럼 드나들며 치열하게 담론을 형성했던 공간이다.

우리 건축·문화계에서 상징적인 역할을 해온 이 건물은 최근 수난을 겪고 있다. 건물 소유주인 설계사무소 공간이 지난 1월 부도를 내 사옥을 내놨다. 현대중공업, 네이버 등이 인수를 추진했지만 불발됐다. 서울문화재단이 사들여 공공건물로 만들려 했지만 서울시의회의 제동으로 중단됐다. 결국 오는 21일 공개경쟁 입찰 방식으로 매각될 예정이다. 최저 매각가격은 150억원.

한국 현대건축의 걸작으로 꼽히는 공간 사옥. 왼쪽 담쟁이로 덮인 건물은 김수근이, 오른쪽 유리건물은 제자 장세양이 설계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건축계 중진 승효상이 "이 문제를 공론화하겠다"며 나선 것이다. 승효상은 1974년 김수근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1986년 김수근이 타계하기까지 곁을 지켰다. 누구보다 가까이서 김수근이 '공간'에 쏟은 애정을 지켜봤다. 1977년 사옥 증축 땐 스승을 도와 함께 참여하기도 했다. "공간 사옥은 김수근 선생의 분신(分身)입니다. 담쟁이가 떨어지기라도 하면 직원들 불러 얼마나 호통치셨는지…(웃음)."

그는 "김수근 선생은 '공간' 곳곳에 문화의 향을 짙게 뿌렸다"며 "그러하기에 공간 자체가 문화"라고 말했다. 실제로 김수근은 1970년대 자신의 설계사무소를 '문화 사랑방'으로 내놓았다. 승효상은 이 공간을 드나들던 문사와 예술인들을 생생히 기억했다. "백남준 선생은 한국에 올 때면 늘 김 선생이 썼던 꼭대기 층 방에 머물렀어요. 또 선생이 만든 지하 소극장 '공간사랑'이 아니었으면 김덕수 사물놀이패도, 공옥진의 '병신춤'도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겁니다(두 사람 모두 공간 사옥의 소극장 '공간사랑' 공연으로 중앙무대에 데뷔했다)."

공간의 탄생과 진화를 봤던 승효상에게 '공간 살리기'는 소명인 것 같았다. "요즘 그 길을 지날 때면 애써 고개를 돌린다"는 그는 "김수근문화재단과 손잡고 트러스트(trust)를 만들어 국립이든 시립이든 건축박물관으로 전환하기 위한 운동을 곧 시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단지 김수근에게 진 부채 의식이나 과거의 추억에 젖은 감상 때문이 아닙니다. 건축을, 문화를 자본의 논리로 밀어붙이는 이 시대의 야만성과 천박함을 바로잡고자 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