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건설 중인 경제특구 4곳과 개발구 14곳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지난 2011년 말 권력을 세습한 이후 '신성장 동력'으로 지목한 야심작이다. 함경북도 나진·선봉(나선)과 개성공단, 평안북도 황금평, 황해남도 강령 등 4곳에 잇따라 특구 건설이 추진됐다. 이어 9개 시·도에 경제특구와 유사한 개발구 14곳을 만들기로 하고 국가 차원의 개발위원회도 만들었다. 그러나 지금 북한의 특구와 개발구 중 외자를 유치하거나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 것은 나진·선봉 하나뿐이라는 자조 섞인 말들이 나오고 있다. 나선조차도 외부 북한 사회와 철조망으로 차단돼 있어서 '모기장 특구'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북한과 중국 간 경제협력의 상징인 나선시는 요즘 북한에서 제일 잘나가는 도시라고 한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작년과 올해 북한을 떠난 탈북자 2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나선시는 북한에서 제일 잘사는 도시이자 가장 살고 싶은 시 1위였다. 이곳에서 살다 올해 탈북한 김모씨는 "새로 만들어진 도로 위로 택시들이 질주하고 곳곳에 아파트 건설이 진행되고 있다. 밤에는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등 자본주의 도시를 방불케 한다"고 했다.
나선 특구에는 현재 중국과 일본·러시아·캐나다 등 150여개 외국기업이 합작기업 형태로 입주해 있다. 한번 외식비가 100위안(약 16달러)이나 되고 휴대폰 보급률도 80%에 이른다. 북한 돈 구경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외화 사용이 보편화돼 있다. 외화를 벌기 위한 성매매도 성행하고 있다. 보안원들이 단속을 하지만 뇌물을 받고 묵인해주고 소개비까지 챙긴다고 한다. 합작기업에선 외국인 사장이 직접 인력을 채용하고 당에서 파견한 간부의 간섭을 배제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북한 당국은 이 같은 자본주의화에 바짝 긴장하면서 최근 특구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는 통제 조치를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은 지난달 특구 시찰을 한 뒤 "나선은 완전히 썩어빠진 자본주의의 온상이 돼 버렸다. 봉쇄를 더욱 철저히 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나선 특구 지역을 둘러싼 300㎾ 고압전기 철조망 경비를 강화하고 있다. 이른바 '모기장 치기'에 나선 것이다. 철조망을 넘어 들어가다 감전돼 죽는 사람도 늘고 있다. 나선 특구 개발 효과가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가기는커녕 우물 안 개구리 신세가 돼 버린 것이다.
다른 특구는 사정이 더 좋지 않다. 북한은 2011년 4월 황해남도 강령에 경제특구를 만들겠다며 중국기업의 투자 유치를 추진했다. 이를 위해 강령군의 외화벌이 회사 500여개를 내쫓고 중국인들을 불러 실사까지 했다. 그러나 중국은 작년 7월 심사 끝에 강령은 항만이 너무 협소하고 전기·도로 사정이 너무 열악하기 때문에 투자 부적격 지역이라고 판정했다. 신의주 인근에 추진되는 황금평 특구도 현재 거의 진척이 없는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