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서 7월 초 한 병사가 군기 교육 중 사망한 직후 시작된 시민들의 사회 운동이 정치권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10일 보도했다. 이들은 시위에 참여할 때 집권 국민당을 상징하는 파란색이나 최대 야당 민진당의 녹색과 차별화된 흰색 셔츠를 입고 나와 '흰셔츠군(軍·White Shirt Army)'이라 불린다.
흰셔츠군은 대만의 양대 정당인 국민당·민진당과 달리 정식 정당이 아니다. 지도부나 조직도 없다. 지난 7월 회사원, 대학생, 의사, 연구원 등 시민 39명이 군부대의 가혹 행위를 비판하며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를 통해 자발적으로 결성한 단체다. 20~30대가 주축으로 첫 시위에 3만명이 모였고 갈수록 동조 세력이 늘고 있다. 지난 8월 3일 시위 때는 25만명이 타이베이 총통부 앞에 모였다.
시위 현장에서는 뮤지컬 '레미제라블' 삽입곡인 '민중의 노래가 들리는가'를 부르거나 조명등으로 '불의(不義)' '진실'이라는 글자를 만들어 총통부 사무실에 비추는 등 참신한 아이디어가 등장했다. 처음 흰셔츠군을 만든 리우린 웨이(30·의사)는 "우리는 어느 정당이나 지도자도 지지하지 않는다"며 "흰 셔츠만 입으면 간단히 가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치인들의 시위 참여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반향은 컸다. 이들의 시위가 시작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마잉주(馬英九) 총통이 해당 병사의 타살을 인정하고, 대국민 사과를 했다. 군 범죄를 민간 법원에서 재판하도록 법도 개정됐다. 정부가 시위대에게 사실상 항복한 것이다. 흰셔츠군은 대만 역사상 가장 크고 가장 놀라운 사회 운동이라고 WP는 전했다.
이들은 이 밖에도 민주주의 가치 수호, 시민의 권리 존중, 원전 건설반대 등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지도부가 없기 때문에 2011년 미국에서 일어난 '월가 점령' 시위처럼 금세 사그라질 가능성도 있다고 WP는 전했다. 지난달 시위에는 참가자가 6만명으로 줄었다. 흰셔츠군은 정부 감시 웹사이트를 개설해 지속적으로 정치권의 변화를 이끌어낸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