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단렌(經團連) 등 일본의 4개 경제단체가 6일 한국 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이 양국 경제 관계를 훼손할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이 문제가 양국 간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다. 그동안 역사 인식 등을 둘러싼 정치·외교 문제로 갈등이 발생해도 경제 관계에는 파급시키지 않는다는 '정경분리 원칙'이 암묵적으로 지켜졌다. 하지만 이번 배상 판결은 당사자가 일본 기업이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난다.
일본 재계 단체의 공동성명은 사실상 기업에 대해 개별 배상에 응하지 말고 행동통일을 하자는 의미도 있다. 일본 니시마쓰 건설은 2010년 2차대전 중 일본 니가타에 끌려갔던 중국인 징용자 183명에게 1억2800만엔에 달하는 배상금을 지불했다. 일본 내 재판에서는 배상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받았지만, 니시마쓰는 화해 차원에서 개별 배상금을 지불했다. 강제징용과 관련된 일본 기업은 300여개 정도로 추정되는데 다른 기업들은 당시 니시마쓰건설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일본 정부와 재계는 개인 배상을 인정할 경우, 한국은 물론 중국·동남아에 대한 '전후 배상'의 틀 자체가 깨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일본 언론도 판결에 따라 한국에 대한 투자가 위축될 것이라고 경고를 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징용 배상 판결은 한국의 컨트리 리스크를 높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에 의해 징용 배상 문제가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해결됐는데, 뒤늦게 반일 분위기에 편승한 판결이 나올 경우, 한국을 어떻게 믿고 투자를 할 수 있느냐는 논리로 비판했다. 신일철주금의 무네오카 쇼지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도 이 신문과 인터뷰에서 "법률적 근거가 없는 지출을 하면 주주대표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징용 배상 판결은 사실상 확정적이다. 지난 7월 서울고법과 부산고법이 신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에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내렸다. 지난 1일 광주지법이 미쓰비시에 대해 근로정신대 피해자 배상 판결을 내렸다. 해당 기업들은 상고했다. 대법원이 지난해 개인청구권이 유효하다는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했기 때문에 연말로 예상되는 최종판결에서 개인 배상을 인정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와 재계는 확정판결 이후를 대비하는 분위기이다. 포스코의 주식을 갖고 있는 신일철주금의 경우, 배상에 응하지 않으면 주식과 배당금이 강제압류를 당할 수 있다. 니혼게이자이는 "한일투자협정에 기반해 국제중재기관에 중재를 신청하는 등의 방법이 있다"고 전했다. 한일청구협정에 따라 조약 위반이라는 점을 내세우며 중재위원회 회부, 국제사법재판소 제소 등으로 이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