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조부 島山 덕분에 70년대 장발 단속 피했죠"

    입력 : 2013.11.08 03:01

    [안창호 선생의 태극기 들고 서울 온 외손자 필립 안 커디]

    할아버지 졸업장 받으러 延大 방문, 할머니가 직접 만든 태극기 전시도… 젊은이들이 보고 島山 기억해 주길

    "할아버지는 태극기를 한민족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상징'이라고 생각하셨어요. 할머니가 직접 만드신 이 태극기를 미국 한인들에게 보여주고 민족정신을 알리셨죠."

    7일 오전 서울 연세대 교정에서 만난 도산 안창호(1878~1938) 선생의 외손자 필립 안 커디씨(57)가 미국에서부터 가져온 천 보따리를 펼쳤다. 가로 3.5m, 세로 1.5m짜리 대형 태극기가 나타났다. 도산 선생이 사용했던 이 태극기는 8일부터 내년 1월 4일까지 연세대 박물관에서 열리는 '도산 안창호와 연세' 전시회에서 선보인다. 커디씨는 "내게는 매우 소중한 할아버지·할머니의 유품인데, 많은 젊은이가 보고 도산을 기억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7일 오전 연세대 언더우드관에서 도산 안창호 선생의 외손자 필립 안 커디씨(오른쪽)가 김도형 연세대 박물관장에게 할아버지의 태극기에 대해 설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
    7일 오전 연세대 언더우드관에서 도산 안창호 선생의 외손자 필립 안 커디씨(오른쪽)가 김도형 연세대 박물관장에게 할아버지의 태극기에 대해 설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 /김지호 객원기자
    커디씨는 할아버지의 연세대 졸업장을 대신 받기 위해 지난 6일 입국했다. 연세대 전신인 구세학당(언더우드학당)에서 공부했던 도산 선생의 정신을 기려 8일 연세대 학술정보관에서 명예 졸업장 수여식을 열기로 했기 때문이다. 도산 선생은 16세 때 평양의 가난한 가족을 떠나 서울로 내려왔다. 어느 날 정동길에서 "누구든지 배우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먹이고 재우면서 공부시켜 주겠다"는 밀러 선교사를 만나 구세학당에 입학한 것으로 알려졌다. 커디씨는 "할아버지에게 구세학당은 집이나 마찬가지였고, 구세학당에서 공부하던 시절은 도산의 시작이었다"고 말했다.

    커디씨는 도산의 장녀인 안수산(98) 여사와 아일랜드계 미국인 아버지(작고) 사이에서 태어났다. LA 굿사마리탄 병원에서 병원장 고문으로서 일하면서 동시에 도산에 관한 연구·기고 활동을 해왔다. 그는 "연세대는 할아버지뿐만 아니라 나와도 인연이 깊다"고 말했다. 영어 자료만으로 할아버지 도산에 대해 공부하는 데 한계를 느낀 커디씨는 1991년 6개월간 한국에 머물며 연세대 한국어학당에서 한국어를 공부했다. "당시에도 학생운동이 한창이었는데, 신촌 지하철역에서부터 코끝을 찌르는 최루탄 냄새를 피해 학교까지 걸어가느라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고 커디씨는 말했다.

    커디씨는 한국을 처음 찾았던 1973년을 회상했다. 당시 17세였던 커디씨는 머리를 어깨까지 기른 채 박정희 대통령을 만났다. "장발 단속으로 유명했던 박 전 대통령과 내가 웃으며 악수하는 사진이 어딘가 남아있을 것"이라며 "아마 박 전 대통령도 도산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내 장발을 이해해준 것 같다"고 말했다.

    커디씨는 "도산을 독립운동가로만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는 전(全) 생애에 걸쳐 한국인들의 자유와 인권을 위해 애썼다"며 "이번 명예 졸업식과 전시회를 통해 한국의 대학생들이 도산을 기억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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