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선의 태평로] 탐욕스러운 도청 사태가 보여준 미국의 민낯

  • 국제부장 강인선

    입력 : 2013.11.08 05:51

    이라크戰, 9·11테러… 美 '정보 실패'가 원인, 만회 위해 NSA 운영
    막대한 인력·예산 쓰며 무차별 도감청 일삼는 '정보 수집 괴물'
    전 세계에 들통나… 이런 실패도 없을 것

    강인선 국제부장 사진
    강인선 국제부장

    이라크 전쟁 취재를 갔을 때의 일이다. 전쟁 시작 전 국경지대에 머물면서 미군의 전쟁 준비 과정을 지켜봤다. 해당 부대의 첫째 임무는 이라크 남부의 한 군용 비행장을 접수해 미군 보급 루트로 확보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비행장은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고 버려둔 상태였다. 군이 제공한 위성사진을 봐도 비행장 상태는 좋지 않았다. 활주로 곳곳에 거뭇거뭇한 반점이 보였다. 활주로에 생긴 웅덩이일 것이라고 했다. 군인들은 웅덩이가 깊다면 보수하는 데 일주일이 넘게 걸릴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전쟁이 시작된 다음 날 천신만고 끝에 현장에 도착해 보니 활주로는 말짱했다. 군인들은 당장 활주로를 열 수 있다며 환호했지만 왠지 그때부터 미군의 정보 능력에 의구심을 갖게 됐다.

    인적 정보도 부정확하긴 마찬가지였다. 미군이 현지 정보원들을 통해 얻은 정보에 따르면, "이라크군은 미군의 압도적인 힘에 겁을 먹어 싸우지도 않고 투항할 가능성이 높으며, 후세인의 압제에 시달린 이라크인들은 미군을 오히려 환영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실제 상황은 달랐다. 이라크군은 거세게 저항했고 이라크인들은 분노에 찬 눈으로 미군을 노려봤다.

    이런 사례는 일부 미군의 오판일 수 있다. 하지만 전체 그림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명분이었던 대량 살상 무기는 이라크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부시 행정부는 훗날 핵심 정보에 문제가 있었다고 시인했다. 끔찍한 정보 실패였다. 9·11 테러를 막지 못한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진상조사위가 3년 조사 끝에 내린 결론도 역시 정보 실패였다. 테러 위협을 감지할 수 있는 정보가 있었는데도 정보기관의 대응 소홀로 테러를 사전에 막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난 10여년 미국은 이 재앙과도 같은 정보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정보 조직을 개혁하고 엄청난 예산을 쏟아부었다. 이 과정에서 국가안보국(NSA)이 비대하게 이상 팽창했다. 직원 3만5000명에 예산 연 10조원을 쓰면서, 대통령에서 보통 사람에 이르기까지 휴대폰과 이메일을 무차별적으로 도·감청하는 탐욕스러운 정보 수집 괴물로 커버린 것이다. NSA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문자메시지와 신용카드 구매 정보를 몇년치씩 저장한다고 한다. 한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에 정보 수집 기지도 운용한다. "뭐 이렇게까지"라고 할 정도로 무식하게 정보를 긁어모으고 있는 것이다.

    몇년 전 폭로 전문 웹사이트 '위키리크스'가 미국 외교 전문을 쏟아내 세상이 뒤집어질 것처럼 떠들썩했다. 하지만 요즘 미국의 도·감청 사태에 비하면 위키리크스 사건은 별일도 아니었다.

    NSA 도청 스캔들은 본질적으로 다른 문제다. 불법적인 도·감청인 데다 미국의 감청 실태는 우방끼리 양해하고 넘어갈 수준이 아니다. 한 미국 언론은 NSA의 정보 수집 활동이 "숨이 턱 막힐 정도로" 공격적이었다고 했다. 실제로 NSA 사태의 여파는 주요국 외교 관계를 뒤흔들고 각국 정보기관을 재정비하게 만들고 있다.

    미국은 불법 도·감청에 대해 "앞으로 하지 않겠다" "도가 지나친 감이 있다"는 식으로 애매하게 넘어가려는 태도이다. 어쩌면 속으로는 '어차피 다들 능력껏 하고 있는 게 현실 아니냐'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적은 물론, 동맹국, 우방 할 것 없이 엿볼 수 있는 것은 모두 엿보고 엿들을 수 있는 건 모두 엿듣는 미국의 민낯도 드러났다. 자국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다른 나라를 무차별적으로 도·감청하고도 납득할 만한 해명이 없는 태도, 이보다 엄청난 정보 실패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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