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고문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國政) 키워드는 비정상(非正常)을 정상화하는 것이다."―청와대 사람들의 말이다. 한마디로 비정상 상태로 꼬여 있는 현안들을 바로잡는다는 뜻이다.

이들이 꼽는 정상화의 품목은 이렇다. 우선 대한민국의 정당성을 해치는 종북 세력의 뿌리 뽑기다. 이석기류(類)의 종북 세력이 더 이상 이 땅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철퇴를 가한다는 것이다. 전교조가 해직 교사를 조합원으로 유지하는 등의 법 무시와 '정부 우습게 알기'를 더 이상 방관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의지가 실린 또 다른 주요 사안은 역사 교과서 문제다. 대한민국 정통성에 의문을 제기한 좌편향 교과서를 이제는 바로잡을 때가 됐다는 인식에 투철하다는 것이 청와대 참모들의 전언이다. 공기업의 방만 경영도 차제에 발본색원하고 밀양 송전탑 건설을 방해하는 '외부 세력'의 차단에도 단호하다. 정부 내의 잘못된 관행이나 조직 기강을 흔드는 혼돈도 더 이상 방치하지 않겠다고 했다. 원전 비리를 철저히 수사하고 군(軍) 내부의 기강 해이, 검찰과 감사 기능의 혼선 등에 대해서도 그대로 보고 있지만은 않겠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최근 인사도 이런 '정상화'를 염두에 둔 '박근혜 색깔 내기'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2010년대 들어 점차 그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대한민국 부정(否定) 세력'을 겨냥한 것이기도 하다. 종북 세력이 국회에 버젓이 진출하고, 사법부 재판에서 국민의 상식적 법(法) 감정에 도전하는 사례가 속출하는가 하면 일부 식자 사이에서도 '베트남식(式) 통일'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박 정부는 헌법 지키기, 법질서 확립, 대한민국 국기와 정통성 확보라는 국민적 요구에 부응할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일부 보수층 인사가 공개 석상에서 "간첩이 날뛰는 세상보다는 차라리 유신 시대가 좋았다"는 극단적 발언을 하고 있는 것은 이런 상황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문제는 정상화의 통로인 소통에 있다. '국정의 정상화'는 '정치의 정상화'까지 포함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 원인이 어느 쪽에 있건 현재 여야의 대치 국면, 청와대의 오불관언은 누가 봐도 정상적이지 않다. 청와대는 그 책임이 야당에 있다고 말한다. 국정원 댓글 사건이 현 정권과 무관한데도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를 요구하며 '천막 정치'로 치닫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했다.

박 대통령은 억울하다고 말할지 모르나 지금 국민 사이에 박 대통령의 이미지는 '불통 대통령'으로 돼 있다. 많은 논자(論者)가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박 대통령의 1인 정치, 야당과 대화 거부를 지적해온 것이 누적된 때문이기도 하지만 상당 부분 '원칙'으로 포장된 박 대통령의 고집에 기인하는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는 '길이 아니면 가지 않는' 사람일는지 모른다. 하지만 정치인이라면 특히 통치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길이 없으면 돌아서도 가고' '길을 만들어서도 가야' 한다. 지금 국회에는 민생과 직결된 사회·경제 법안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마치 나라가 동맥경화증이라도 걸려 있는 듯하다. 그런데도 야당 탓만 하며 버티면 손해는 누가 보나? 굳이 따지자면 어차피 지지도 20%를 못 넘는 야당은 크게 잃을 것 없지만 박 대통령 지지도는 60%가 넘는다.

청와대는 "민생 문제, 정책적 차이의 차원이라면 언제든지 타협이 가능하다"고 한다. 타협을 하려면 소통을 해야 한다. 지금 민주당이 과연 단합된 '한목소리'냐에 대한 의문이 있지만 대통령에게는 한목소리하고만 대화한다는 행운은 없다. 설혹 야당의 명분이 약하고 억지라고 해도 그렇다. 이제 '나로서는 할 말 했다. 공은 당신네 쪽으로 넘어갔다'고 말할 수 있기 위해서도 일단 대화는 해야 한다.

박 대통령이 불통 이미지를 벗어야 하는 것은 자신이 내건 '정상화'의 안착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박 대통령의 승패는 그가 추진하는 '나라 정상화'의 성공 여부에 달렸다. 이석기 등의 공소 유지가 삐걱거리고 전교조의 극한투쟁에 정부가 밀리고 교과서 수정 문제에서도 정부의 영(令)이 서지 않는 사태가 발생하면 대한민국의 질서와 가치는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보수·우파 세력이 박 정부의 '정상화'가 현실 정치에서도 작동할 수 있기를 바라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대통령은 야당 또는 야당을 넘어 국민과 대화하는 형국을 항상 유지해야 한다. 역대로 우리 대통령은 대부분 회의를 주재하고 장관과 비서에게 지시하고 일부 행사에 참석하며 외국 원수들과 회담하는 장면으로만 국민에게 비치고 있다. 하지만 정치 선진국에서는 대통령이나 총리가 직접 국민 앞에 나서서 대화하고 소통한다. 박 대통령은 지금 높은 지지도를 누리는 여성 대통령이다. 야당과 대화하고 국민과도 정면으로 마주하며 얘기할 자신감은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