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화학물질을 무작정 거부하는 사회

조선일보
  •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탄소문화원 원장
    입력 2013.11.02 03:13

    화학물질 관리 잘못했다가 매출 5% 과징금에 파산할 수도
    사고재발 막으려 法 강화했지만 영업 비밀까지 등록해야 할 판
    비용·책임 짊어진 업계 고충 커… 감당할 수 없는 규제는 재앙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탄소문화원 원장 사진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탄소문화원 원장

    정부가 화학물질에 대한 본격적인 관리를 시작한다. 이제 전국의 모든 사업체는 사용하는 화학물질과 그 유해성에 대한 자료를 정부에 등록하고 평가를 받아야만 한다. 자칫 관리 소홀로 국민과 환경에 위해를 발생시키면 해당 사업장 매출액의 5%를 과징금으로 내고 파산할 각오도 해야 한다. 국회가 모처럼 초당적 협력으로 통과시켜 2015년 발효되는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과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에 따르면 그렇다.

    사람과 환경에 엄청난 피해를 줄 수 있는 화학물질을 엄격하게 관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EU, 미국, 일본을 비롯한 모든 선진국이 그렇게 하고 있다. 물론 우리도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1990년부터 엄격한 '유해물질관리법'을 시행하고 있다. 유해 물질을 사용하는 사업체는 반드시 치명적 사고 예방을 위한 정부의 엄격한 규제를 따라야 하고, 사고에 대한 법적·사회적 책임도 져야 한다. 만족스럽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우리도 유해 물질을 상당한 수준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번에 제정된 화평법과 화관법은 그런 규제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더 안전한 환경을 만들겠다는 의도를 나무랄 수는 없다. 그렇다고 규제에 따른 엄청난 비용과 무거운 책임을 감수해야 하는 산업계의 어려움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국회가 만장일치에 가깝게 통과를 시켰으니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태도는 반(反)민주적이고 오만한 것이다. 가장 규모가 큰 기간산업으로 수출 증대와 안정적 경제 발전에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는 화학 산업계의 심각한 우려와 관심은 적극적으로 수용해줘야만 한다.

    가습기 살균제나 불화수소 누출 사고의 재발 방지라는 입법 취지는 매우 어설픈 것이다. 자칫 국회와 환경부의 화학물질에 대한 전문성을 의심하게 만들 수 있는 주장이다. 두 사고는 유해성 정보를 환경부에 등록하지 않아서 생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고는, 항생제와 달리 살균제는 절대 먹거나 흡입해서는 안 된다는 일반 상식을 무시한 엉터리 제품을 법적으로 허가해주는 것도 모자라 국가통합인증(KC) 마크까지 붙여주었던 산업부의 허술한 공산품 관리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개발 당시에는 흡입 독성을 몰랐으니 어쩔 수 없다는 환경부 장관의 변명도 잘못된 것이다. 로마 시대부터 써왔던 석면의 피해도 보상해주는 것이 현대의 엄연한 국제 관행이다. 불화수소 누출 사고도 '불화수소'와 '불산'조차 구별하지 못했던 정부가 평소 유해 물질 취급에 대한 관리·감독과 화학 사고 대응 노력을 소홀히 했던 탓에 피해가 커졌다고 볼 수도 있다. 사고에 대한 진단이 잘못되면 재발 방지를 위한 처방도 무용지물이 된다.

    다양한 용도와 방법과 규모로 사용되는 화학물질의 유해성을 획일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의도도 비현실적이다. 모든 화학물질에 대해 척추동물 시험 자료를 요구하는 화평법 14조는 명백한 과잉 입법이다. 피부에 직접 바르는 화장품 성분의 독성 확인을 위한 동물실험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도 감당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유럽에서 성공했으니 우리도 해야 한다는 주장은 위험하고 무책임한 것이다. 유럽과 우리의 화학 산업은 비교가 어려울 정도로 다르다. 화학 산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나 화학 사고에 대한 대응 수준도 전혀 다르다. 우리가 무차별적 정보 공개를 소화할 능력이 있는지도 고민해야 할 일이다.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지나친 규제는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 될 수도 있다.

    기업이 감당해야 할 등록과 관리 비용을 줄여주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어차피 공개될 자료라면 모든 산업체가 개별적으로 중복해서 제출해야 할 이유가 없다. 산업체에 따라 유해성 자료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등록되어 공개된 자료는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정부 차원에서 유해성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노력이 필요할 수도 있다. 기업의 영업 비밀을 등록하도록 강요할 이유도 없다. 과도한 징벌적 과징금에 대한 합리적 대안도 만들어야 한다.

    모든 화학물질을 무조건 위험하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편견이다. 위험은 무조건 회피해야 한다는 생각은 비겁하고 패배주의적이다. 오히려 인류 역사는 위험을 적극적으로 극복한 결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화학 산업이 흔들리면 우리 경제도 견딜 수 없다. 화학 사고에 대한 정부의 책임과 의무도 결코 가볍지 않다. 유해 물질 취급의 관리·감독, 화학 사고 대응에 필요한 사회적 인프라 구축, 화학물질의 위험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 수준을 높이려는 정부의 더욱 적극적인 노력과 투자가 필요하다. 모든 문제를 하위법에서 바로잡겠다는 주장도 무책임한 것이다. 문제가 드러나면 적극적으로 바로잡는 것이 현명한 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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