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소프트웨어 산업 이 지경이어선 수출 많이 해봐야 헛일이다

조선일보
입력 2013.11.01 03:06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졸업생 10명 중 9명이 전공을 버리고 다른 길을 간다. 정부가 소프트웨어 정책을 제대로 펴지 않고 20년 넘게 방치한 결과다." 소프트웨어 정책을 담당하는 미래창조과학부 공무원을 상대로 한 강연에서 나온 말이다. 강연자인 고건 전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는 미국 벨 연구소 연구원 출신으로 1983년부터 20년간 서울대에서 컴퓨터공학 전공 학생들을 가르쳤다.

세계 산업의 중심 추는 소프트웨어로 옮아갔다. 시스템 개발 비용에서 소프트웨어의 비중은 통신 기기 64%, 전투기 51%, 의료 기기 41%, 자동차는 40%에 이른다. 한국이 제조업 강자가 됐다고 자랑하지만 산업 기기에 집어넣는 내장형 소프트웨어의 국산화율은 휴대용 통신 기기 15%, 자동차 5%, 조선 4%, 국방 1%에 불과하다. 근육만 국산이고 두뇌는 거의 모두 수입품이다.

국내 산업 현장에선 쓸 만한 소프트웨어 인재를 구하기가 힘들다. 삼성전자는 소프트웨어 인력 3만6000명 중 1만6000명을 인도·방글라데시 등 61개국 외국인으로 채우고 있다. 앞으로 5년간 필요한 소프트웨어 인력이 50만명인데 국내 4년제 대학의 관련 학과 졸업생은 한 해 1만7200명밖에 안 된다. 게다가 졸업생 대다수가 전공과 관계없는 분야로 진출하고 있다. 세계 500대 소프트웨어 기업 안에 한국 기업이 하나도 없고 소프트웨어 경쟁력이 OECD 19개국에서 14위에 처져 있다 보니 그나마 어느 정도 경쟁력을 갖춘 게임 업체에만 인재가 몰리고 있다.

미국 CNN은 2010년·2011년 연속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최고 직업으로 꼽은 바 있다. 그러나 우리는 시장에 만연한 불법 복제, 턱없이 낮은 소프트웨어 개발 단가, 작은 회사가 좋은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면 판로(販路)를 봉쇄하거나 갑을(甲乙) 관계로 눌러 흡수해버리곤 하는 대기업의 풍토 때문에 소프트웨어 일을 해서는 앞날이 깜깜하다는 인식이 팽배해있다. 자연히 우수한 젊은이들이 좀처럼 이 길로 들어서려 하지 않는다. 이런 현실을 바꾸지 못하면 수출을 아무리 많이 해도 남 좋은 일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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