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기 논설위원

최근 항공우주연구원 국정감사에서 한국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씨가 항공우주 연구와 무관한 분야로 진출한 것이 논란이 됐다. 이씨는 작년 8월 미국으로 가 MBA(경영전문대학원) 과정을 밟고 있고 올 8월에는 한국계 미국인 안과 의사와 결혼했다. 의원들은 국가 예산 260억원이 들어간 우주인 배출 사업이 결국 전시행정으로 끝난 것 아니냐고 질책했다. 인터넷에는 즉각 이소연을 비난하는 글들이 오르기 시작했다. '먹튀'니 '된장녀'니 하는 인신공격이 난무했다. 이씨는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폐쇄해야 했다.

이소연은 2006년 4월 우주인 모집에 응시해 3만6200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고산씨와 함께 최종 후보 2명으로 선발됐다. 그 후 1년간 러시아 유리 가가린 우주인훈련센터에서 훈련을 받고 2008년 4월 8일부터 19일까지 우주를 여행하고 귀환했다. 처음엔 고씨가 탑승할 예정이었으나 발사 한 달을 앞두고 러시아 측이 고씨의 보안 규정 위반을 문제 삼는 바람에 전격 교체됐다.

이소연의 계약 조건은 프로젝트 완료 후 2년간 항우연 연구원으로 일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계약 기간보다 2년을 더 근무한 뒤 유학을 떠났다. 더 이상 공식적으로 이행해야 할 의무는 없다. 그동안 한국에서 이소연의 주 업무는 강연이었다. 4년간 전국을 돌며 235번의 강연을 했다. 그녀는 한 인터뷰에서 "점점 내 삶이 없어지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11일간의 우주 비행 얘기로 평생을 살 수는 없지 않은가. 결국 내 인생을 책임질 사람은 나밖에 없는데, 뭔가 마무리를 짓고 다른 방향을 잡아야만 했다"고 고백했다. 그녀도 또래 젊은이들과 똑같이 자신의 정체성과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번민해왔던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우연히 우주여행의 행운을 누렸다는 이유만으로 남은 생애에 한 가지 일만 하며 살라고 강요하는 것은 잔인한 일이다.

이소연에 대한 국민 기대가 필요 이상으로 컸던 것은 정부가 '우주인'에 대해 환상을 심어준 탓이 크다. '우주인'이란 지구 대기가 희박한 고도 100㎞ 밖 공간을 갔다 온 사람을 말한다. 1961년 4월 소련의 유리 가가린 이후 52년 동안 38개국에서 514명이 우주를 다녀왔다. 닐 암스트롱을 비롯한 24명은 달 표면 또는 달 궤도까지 날아갔다. 러시아는 '우주 택시'로 불리는 소유즈 우주선에 희망자를 유료 승선시켜 400㎞ 상공 우주정거장에 데려가는 사업으로 큰 돈벌이를 하고 있다. 일본 도쿄방송은 1990년 5000만달러(약 500억원)를 지불하고 기자를 소유즈에 태웠고, 2001년에는 미국의 데니스 티토라는 부자가 자기 돈 2000만달러를 내고 8일간 우주 체험을 했다. 미항공우주국(NASA)은 이처럼 정식 우주 임무에 참여하지 않고 '상업 계약'에 따라 탑승한 사람들을 우주 비행사(astronaut)가 아닌 우주 비행 참가자(spaceflight participant)로 분류한다. 물론 이소연도 여기에 포함된다.

한국 우주인 프로젝트는 '세계 몇 번째 우주인 보유국'이라는 타이틀 하나를 사려고 세금 260억원을 쓴 한바탕의 '우주쇼'였다. 나로호도 크게 다르지 않다. 로켓의 핵심인 1단 엔진을 러시아에 2300억원을 주고 사오는 손쉬운 방법을 택하는 바람에 지금 우리의 독자적인 로켓 개발은 출발선에서 다시 시작하는 중이다. 이는 정책 결정권자의 잘못이지 이소연이나 나로호 실무자들의 잘못이 아니다. 이소연과 나로호의 값비싼 경험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이 있다면 이벤트나 편법으로는 결코 '우주 강국'의 꿈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