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능' 뚫고 2020년 도쿄올림픽 유치한 일본 외교,한국은?

  • 유민호·미국 워싱턴DC 소재 ‘퍼시픽21’ 소장
    입력 2013.10.25 16:05 | 수정 2013.10.25 22:32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9월 30일 척 헤이글 미 국방장관과 만난 자리에서 일본의 과거사 인식을 강하게 비판했다.
    2020년 도쿄(東京)올림픽 유치는 방사능이라는 올림픽 역사상 전대미문의 난관(難關)을 극복한, 일본 외교의 승리이다. 일회성 감정과 거리가 먼, 국제무대에서의 정확한 판단과 분석에 기초한 ‘승전보’이다.

    하지만 2020년 도쿄올림픽에 대한 국내 반응을 보면, 일본을 ‘애’로 보는 세계관이 한국의 대세(大勢)라는 느낌이 든다. 올림픽 유치 발표 이전은 물론, 개최지로 공식 결정된 이후에도 2020년 올림픽에 관한 분석과 전망이 거의 없다.

    더욱이 한국 신문에 나타난 대부분의 기사는 부정적이고 음울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유치결정이 내려지기 직전까지 한국 신문에 실린 기사를 살펴보자. ‘세계 네티즌 도쿄올림픽 유치 반대서명운동’, ‘동아시아 외교마찰로 일본 2020년 올림픽유치 비상’, ‘후쿠시마(福島) 원전사태 일본 올림픽 유치노력 위협’….

    ◇2008년 베이징올림픽 개최는 찬양하고 2020년 도쿄올림픽은 부정적으로…한국인들의 ‘주자학적 세계관’

    이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개최가 결정됐던 2001년 7월 당시 국내 여론과 크게 대조가 된다.
    ‘베이징올림픽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 ‘베이징 특수 머뭇거리면 화중지병(畵中之餠)’, ‘베이징올림픽 이후 중국의 변화와 한국의 대응’, ‘베이징올림픽과 중국의 웅비(雄飛)’, ‘중국관광유치확대 지원방안’, ‘베이징올림픽의 한반도 평화통일 효과’….

    당시 상황을 인터넷으로 살펴보면, 글의 종류도 많지만 내용도 우호적이고 긍정적이다. 도쿄올림픽에 관한 부정적 기사는 유치결정이 난 뒤 한층 더해진다. 방사능 피해와 지하수 오염 문제로 인해 올림픽 개최가 어려워질지 모른다는 식의 기사가 대세이다. 좌성향의 일본 단카이(團塊)세대 지식인의 글이 마치 일본 전체를 대변하는 글로 둔갑해 한국에 전달됐다.

    도쿄가 올림픽을 치르게 되면서, 2024년 올림픽을 준비해 온 부산시가 망연자실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스페인이나 터키가 도쿄를 누르고 2020년 올림픽 유치를 할 것이란 가정하에 부산올림픽을 준비했다고 한다.

    부산의 정세판단 기준은 ‘눈의 광채나 얼굴 생김새’로 세상사를 이해했던 조선 주자학(朱子學) 세계관과 비슷하다. 전세계가 중국과, 소중국인 한국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식의 세계관이다. 부산이 어느 선까지 나섰는지 모르지만, 올림픽 개최를 둘러싼 막후(幕後) 스포츠외교의 흐름에 관심을 가졌다면 전혀 다른 대응책을 모색했을 것이다.

    2020년 올림픽 유치와 관련한 스포츠외교의 하이라이트는 일본-프랑스의 연대이다. 올림픽은 3회, 즉 12년 내에는 같은 대륙에서 치르지 않는다는 암묵의 룰이 있다. 프랑스는 줄기차게 올림픽 유치에 주목해 온 나라이다. 2008년, 2012년 올림픽 유치를 희망했지만, 중국 베이징과 영국 런던에 패한다. 일본도 프랑스처럼, 2008년부터 올림픽유치를 희망한 이래 2016년, 2020년의 유치전에 뛰어든다. 파리는 이미 두 번이나, 도쿄는 1964년 올림픽을 개최한 유경험 국가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국제외교 및 올림픽 외교의 본질 꿰뚫은 일본 정세판단력과 외교력의 승리

    유럽의 프랑스와 아시아의 일본은 적(敵)인 동시에 동지가 될 수 있다. 동일 대륙 안에서의 올림픽 유치 유예기간이 12년이기 때문이다. 두 나라는 동시에 결승에 올라가지 않는 한, 서로 도와주는 동지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 2020년 올림픽이 그러하다. 스페인 마드리드가 올림픽을 유치할 경우, 같은 유럽권인 파리올림픽 유치는 2032년 이후에나 가능하다. 적의 적은 친구이다.

    프랑스는 스페인 타도에 가장 앞선, ‘일본의 친구’로 변신한다. 두 나라만 알고 있는 암묵적 약속이지만, 일본은 2024년 파리올림픽 개최를 지지하는 최고의 친구로 변신할 것이다.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전(前)도지사는 도쿄올림픽 개최를 공약으로 내세운 순간, 프랑스 정부와 밀월관계에 들어갔다. 주변 참모들의 프랑스 사랑과 파리 출장도 남달랐다.

    올림픽 개최를 결정하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의 수는 전부 115명이다(2013년 6월 기준). 한국의 이건희 삼성회장도 그중 한 명이다. 주목할 부분은 IOC 위원의 대륙별 분포이다. 유럽이 49명에 달한다. 아시아는 24명, 미국과 아프리카가 각각 15명에 불과하다.

    사실상 유럽이 차기 개최지 결정권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지만, 1896년 그리스에서 시작된 근대올림픽의 산파 역할을 한 인물은 피에르 드 쿠베르탱(Pierre de Coubertin)이다. 프랑스인이다. 올림픽에 관한 한 프랑스의 영향력이 얼마나 강할지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의 주관적 판단이지만,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2024년 올림픽 개최지는 파리로 낙찰될 것이다. 일본의 지지를 바탕으로 한, 아시아와 아프리카 친일(親日) 국가들의 표(票)가 프랑스에 몰리게 될 것이다.

    올 9월 8일 일요일 아침,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의 2020년 올림픽 유치 결정전에서 스페인이 1차 투표에서 탈락한 것은 바로 그 같은 막후정치의 결과이다. 터키 이스탄불은 사실 유치 결정전이 치러지기 직전부터 상대가 될 수 없었다. 터키인들은 올림픽 유치를 4년마다 돌아오는 정치적 이벤트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슬람국가인 터키에 대한 유럽의 보이지 않는 차별과 경계는 일본 개최를 확신시켜 주는 절대 상수(常數)였다.

    한국 신문은 올림픽 경기장 건설을 90% 가까이 마친 스페인 마드리드, 무슬림 국가로서 초유의 올림픽 개최국이 될 터키가 2020년의 주인공이 될 것이라 전망했다. 전망이 아니라, ‘희망사항’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일본이 유치국이 될 것이란 얘기는 IOC의 최종발표가 있기까지 전무했다. 대부분의 한국인이 도쿄올림픽 개최소식에 대해 ‘깜짝’ 놀랐던 것은 당연하다.

    올림픽 개최 자체는 세계사를 뒤집어 놓을 만한 엄청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작은 생선’을 대하는 자세를 보면, ‘큰 생선’을 요리할 능력 여부를 알 수 있다.
    도쿄올림픽 개최를 찬미(贊美)하자는 것이 아니다. 도쿄로 최종 결정될 때까지 보여준 일본과 다른 나라 사이의 막후외교에 관한 한국의 무관심이 안타까울 뿐이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한국에 대한 일본, 중국에 대한 일본에 그치지 않는다. 국제무대에서의 일본이라는 틀 속에서 대응할 때 답을 찾을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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