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전6기 영광… "나는 아주 많이, 오래 쓸 것이다"

조선일보
  • 어수웅 기자
  • 동인문학상 심사위원회
    입력 2013.10.16 03:08 | 수정 2013.10.16 09:40

    [2013 동인문학상 수상 '지상의 노래' 이승우]

    등단 32년… 한 계절도 쉬지 않은 작가

    2001년 '식물들의 사생활' 이후 6번 후보 올랐다 이번에 첫 수상
    비극적 가족사로 깊은 상처입어… 이만큼 '사회화'된 건 文學 덕분

    2013년 동인문학상 최종 후보가 4편으로 압축됐을 때, 올해의 주인공으로 이승우(54)를 떠올린 독자가 많았을 것이다. 1981년 '에리직톤의 초상'으로 등단한 이래 32년 동안 17권의 장편소설과 소설집을 쓴 한국문학의 지적인 마라토너. 전 세계 작가의 꿈이라는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의 세계문학 시리즈 '폴리오'문고 에 자신의 작품('식물들의 사생활' '그곳이 어디든')이 포함된 유일한 한국 작가. 누군가는 "아직 이승우가 동인상을 못 받았느냐"고까지 물었다. 하지만 정작 자신에게는 아니었다. 2000년 동인상이 개편된 이후 그의 작품은 5번 최종 후보에 올랐다가 5번 떨어졌다. 장편 '식물들의 사생활'(2001), 소설집 '나는 아주 오래 살 것이다'(2002), 소설집 '심인광고'(2005), 장편 '그곳이 어디든'(2008), 장편 '한낮의 시선'(2010). 이번에 후보에 오른 장편소설 '지상의 노래'는 6번째 도전이었다. 예술은 타인과의 경쟁이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이라지만, 작가 역시 신(神)이 아닌 법. 수상자를 14일 만났다.

    ―5전6기의 영광이다. 소감은.

    "10월 초까지 연락이 오지 않아, 올해도 아니구나, 라고 마음을 비웠다(웃음). 동인상 후보에 처음 올랐던 2001년, (마흔둘이었던) 나는 절박했다. 30대 중반 시절, 이문열 선생이 남자 소설가가 마흔이 되면 결정을 해야 한다고 했다. 계속 쓰든지, 다른 직업을 찾든지. 작정하고 '식물들의 사생활'을 썼다. 하지만 그해 동인상은 김훈 선생의 '칼의 노래'에 돌아갔다. 인정해야 했다. 다음 해 내 작품 '나는 아주 오래 살 것이다'가 후보에 올랐을 때, 수상자는 성석제의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였다. 받을 사람이 받았다고 생각했다.

    14일 서울 정동 성공회 성당에서 작가 이승우.
    일회용 엔터테인먼트가 지배하는 세상. 이승우의 진지하고 지적인 문학이 승리할 수 있을까. 그는“개인이 다양한 것처럼 문학도 다양하다”면서“자기 고유의 목소리를 내는 작은 물줄기들이 함께 행진했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고 했다. 14일 서울 정동 성공회 성당에서. /김연정 객원기자
    문학상의 권위는 심사위원과 수상자의 면면에서 나온다. 동인상은 지금까지 양쪽 모두를 충족해왔다. '식물들의 사생활'이 후보에 들어갔다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대목이 많은 작품이다. 하지만 '지상의 노래'는 최소한 부끄러움이 없다. 이 작품으로 받아서 감사하다."

    이승우의 문학은 이 풍진 세상을 날아올라 승화와 초월을 꿈꾸는 세계로 알려져 있다. 자칫 종교와 형이상학의 영역으로 오해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번 작품의 제목은 '천상의 노래'가 아니라 '지상의 노래'.

    ―당신의 문학적 관심은 인간이 아니라 신이냐고 묻는 사람들에 대하여.

    "(정색하고) 내 모든 소설의 주제는 인간이다.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신을 끌어들였을 뿐이다.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사회학이 필요한 소설이 있고, 심리학이 필요한 소설이 있으며, 초월의 영역이 필요한 소설이 있다. '지상의 노래'는 초월과 함께 사랑, 권력이라는 세 가지 꼭짓점으로 인간을 이해하고 싶었다. 누구는 이 작품을 지독한 연애소설로 읽는다(웃음)."

    그는 전남 장흥 출신. 도로가 포장된 것이 극히 최근이라는 바닷가 작은 마을이 고향이다. 작가는 자신의 산문집 '소설을 살다'에서 "소설이 나를 필요로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소설을 필요로 했다"고 쓴 적이 있다.

    ―문학이 당신에게 무엇을 주길래. 그리고 당신 문학은 독자에게 무엇을 줄 수 있길래.

    "유년 시절, 나는 부적응자였다. 자폐적 인간이었다. 그런 나를 치유하고 구원한 것이 문학이다. 나를 치유하기 위해 글을 썼지만, 내 글이 자신을 치유했다는 독자의 고백을 들을 때마다 반가웠다. 소설의 사회적 기능에 대해 무심하다는 생각에 반성할 때도 있지만, 나는 문학을 도구로 하겠다는 생각을 근본적으로 경계한다. 어쩌면 내 비극적 가족사에도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왼쪽부터 오정희 신경숙 김화영 이문열 김주영씨.
    왼쪽부터 오정희 신경숙 김화영 이문열 김주영씨. 연수 중인 정과리 위원은 프랑스에서 참여했다. /통영=남강호 기자
    ―비극적 가족사라니.

    "(한참 침묵하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어떤 장례를 치렀다. 날 보고 상주(喪主)라고 했다. 내가 든 영정사진의 주인공은 마을에서 정신병으로 격리된 인물이었다. 그가 내 아버지라는 사실을 그날 처음 알았다. 가난은 둘째 치고, 이후 우리 식구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쌍둥이 형이 있는데, 형은 광주 친척집으로, 나는 장흥 큰아버지 집에 맡겨졌다. 네 살 위 누나는 외갓집으로 보냈다. 어머니와도 모두 헤어져야 했다.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 친구가 한 명도 없다. 요즘 생각해본다. 그때 나에게 동심이 있었던가. 내 자폐의 방문을 열고 나오게 해 준 게 문학이다. 지금은 정말 사회화된 거다(웃음). 농담도 하고, 술도 마시고, (조선대 문예창작과에서) 학생들도 가르치고."

    동인상 개편 첫해인 2000년의 이문구(당시 59세) 이후, 이승우는 동인상 최고령 수상자다. 54세. 하지만 동인상은 공로상이 아니다. 작가가 아니라, 그해 책으로 출간된 최고의 작품에 주는 상.

    ―다시, 이 상은 공로상이 아니다. 당신의 문학적 다짐은.

    "매월 독회를 통해 후보작을 공개하는 동인문학상은, 작가 입장에서는 곤욕스러운 부분이 있다. 하지만 투명성과 공정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시작도 못 했을 제도라는 점에 동의한다. 그렇게 인정받았다는 점이 기쁘고, 고맙다. 후배들에게 미안하지만, 나는 아주 많이, 아주 오래 쓸 것이다."


    [선정 과정] "긴 토론 끝에 올해는 이승우"   

    ‘지상의 노래’
    이번 동인문학상 최종심은 소설가 박경리(1926~2008)의 고향이자 묘소가 있는 경남 통영에서 열렸다.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4편. 권여선의 ‘비자나무숲’, 박성원의 ‘하루’, 이기호의 ‘김박사는 누구인가’, 이승우의 장편 ‘지상의 노래’(민음사·사진). 심사위원들은 장시간 토론 끝에 단 한 명씩만을 적어내는 무기명 투표를 실시했고, 결과는 이승우 4표, 박성원 2표였다. 더 이상의 투표는 필요하지 않았다.

    2013년 동인상 심사독회는 2012년 8월 1일부터 2013년 7월 31일까지 출간된 작품을 대상으로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0월까지 매월 진행됐다. 10회의 독회를 통해 24권의 책이 1차 후보작에 합류했고, 심사위원이 각각 4편씩을 적어냈던 9월 독회의 투표에서 위 네 작품이 최종심 후보작이 됐다.


    [선정 이유] 세상에 삼투하는 참회교향곡

    이승우씨의 ‘지상의 노래’는 책이기 전에 하나의 거대한 거울이다. 이 거울은 삶의 뜻을 가리키는 암시들로 은은하건만, 역설적이게도 여기에 비쳐 보이는 것은 무지와 맹목에 사로잡힌 인간의 가련한 행태다. 저 은약(隱約)을 제멋대로 해석해 제 욕망을 채우는 일로 골몰하는 탓이다. 그래서 명분은 그럴 듯하나 실태는 추악한 일들이 인간사를 뒤덮는다. 그러나 그 일로 심히 고통하고 섬뜩 깨닫는 사람들이 또한 있어, 죄악의 덩굴 속에서 참회의 여린 실을 자아 지상의 노래를 울게 하니, 비로소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저 노래가 세상에 삼투하는 과정은 한결같은 고통으로 참혹하지만 거듭되는 각성으로 독자를 전율케 한다. 그걸 울게 한 자는 수없고 그걸 우는 이는 적으나, 그 울음에 공명할 이도 무한정이라, 여울들이 큰 강으로 모이듯, 저마다 다른 소리들이 하나의 교향악을 이루어내니, 장편소설의 진수에 다다른 것도 큰 보람이다.


    ☞이승우

    1959년 전남 장흥 출생. 국토 정남단(正南端)인 바닷가 작은 마을이 고향이다. 동인상 종신심사위원인 고(故) 이청준(1939~2008)과 동향. 그는 “선생의 단편 ‘나무에서 잠자기’를 읽으며 처음으로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내 소설의 지향이자 인생의 사표(師表)였던 분”이라고 했다. 정작 그가 살아있을 때는 동인상에서 계속 떨어졌다.

    1981년 ‘에리직톤의 초상’ 등단 이후, ‘생의 이면’ 등 장편 9권, ‘구평목씨의 바퀴벌레’ 등 소설집 8권을 썼다. 등단 이후 32년 동안 단 한 계절도 글쓰기를 쉬어본 적이 없다. 제1회 대산문학상(1993), 동서문학상(2002), 현대문학상(2007), 황순원문학상(2010)을 받았고, 2009년 ‘식물들의 사생활’이, 2013년 ‘그곳이 어디든’이 프랑스 갈리마르의 폴리오 시리즈 목록에 올랐다. 카뮈, 사르트르, 오르한 파무크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는 뜻이다. 프랑스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한국 작가. 2001년 이후 조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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