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정너(답은 정해졌고 너는 대답만 해)·쓸고퀄(쓸데없이 高퀄리티)·모솔(모태 솔로)…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조선일보
입력 2013.10.08 03:03

한글이 아프다 [2] 세대 간 단절 빚는 줄임말

청소년 사이 퍼진 인터넷 은어… 재미·친밀함 강화 위해 사용, 특정 계층의 문화 보여주기도
예전에도 줄임말 있었지만 요즘은 욕설·성적 의미 많아

주부 김명숙(39)씨는 최근 고교 동창생 3~4명과 함께 카카오톡 대화를 하다가 이상한 말을 들었다. 한 친구가 우스갯소리를 하자 다른 친구가 "여병추~"라고 했던 것. 김씨가 뜻을 궁금해하자 친구는 "재미있는 얘기를 하니까 우리 딸이 그러던데?"라고 답했다. 나중에 인터넷을 찾아본 김씨는 어이가 없었다. '여병추'란 '여기 병신 하나 추가요'의 준말이었다.

웬만한 기성세대라면 그 뜻을 짐작하기도 어려운 '인터넷 줄임말'이 맹위를 떨치고 있다. "솔까말로 걔 듣보잡이잖아"(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걔 듣도 보도 못한 잡놈이잖아) 정도라면 '해독이 가능하다'고 여기던 사람들도 "근자감 쩐다 화떡녀야"(근거 없는 자신감 대단하다, 화장 떡칠한 여자야) "쓸고퀄이냐 충공깽"(쓸데없이 높은 퀄리티냐, 충격과 공포다 이 거지 깽깽이들아) 같은 문장에 이르면 그야말로 '정줄놓'(정신줄 놓았구나) 되기가 일쑤다.

또래 집단의 '유대 강화' 현상

이 같은 줄임말 열풍의 원인으로 가장 먼저 제시되는 것이 '인터넷과 모바일의 영향'이다. 최소한의 정보를 입력해 의미를 전달하려는 통신 언어의 특성상 많이 쓰는 말을 줄여 표현하는 '경제적 동기'가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다. 영어권 인터넷 사용자는 'lol'(laughing out loud·크게 웃다) 'thx'(thanks·감사합니다) 등의 줄임말이 일반화된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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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인터넷 준말 신조어./그래픽=김성규 기자
하지만 이것만으로 범람하는 줄임말의 원인을 해석하는 것은 불충분하다는 의견이 최근 대두되고 있다. '광클'(광속으로 클릭한다) '십덕후'(마니아를 뜻하는 '오타쿠'에 욕설을 섞어 변형한 말) '개드립'('개'와 adlib의 합성어로 터무니없는 언행을 한다는 뜻) 등 글자를 풀어낸다고 해도 기성세대가 쉽게 공감할 수 없는 특정 세대의 문화가 그 속에 녹아든 예가 많기 때문이다.

조선대 국어교육과 오창석씨는 논문 '청소년의 통신 언어 사용 실태 연구'에서 "비교적 시간 제약을 덜 받는 고교생 교지에서도 약어(줄임말)가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줄임말 상당수가 '경제적 동기'에 의해 사용됐다기보다는 ▲표현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적 동기' ▲내용을 재미있게 하기 위한 '오락적 동기' ▲약어를 은어(隱語)처럼 사용해 친밀감을 강화하려는 '유대 강화 동기'에 의해 사용되는 것으로 분석했다.

욕설이나 성적 의미가 많아져

여기서 '은어'의 사전적 의미가 '어떤 계층이나 부류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도록 자기네 구성원끼리만 빈번하게 사용하는 말'이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세중 국립국어원 공공언어지원단장은 "줄임말 자체를 나쁜 것으로 볼 수는 없지만, 최근의 심한 줄임말들은 같은 한국어를 사용하면서도 특정 연령층만 알아들을 수 있는 것으로 결국 세대 간 의사소통의 단절을 가져온다"고 말했다.

한글날을 앞두고 7일 오후 서울 세종로 광화문광장에서 열린‘한글 멋글씨전’에서 한 여성이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다양한 글씨체로 쓰인 한글 전시물을 구경하고 있다.
이렇게 멋들어진 한글인데… - 한글날을 앞두고 7일 오후 서울 세종로 광화문광장에서 열린‘한글 멋글씨전’에서 한 여성이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다양한 글씨체로 쓰인 한글 전시물을 구경하고 있다. /뉴시스
최근의 줄임말은 상대를 비하하는 공격적 욕설로 더 자주 활용된다. 예전 1980년대 줄임말이 '경로석'(경우에 따라 노인도 앉을 수 있는 좌석) '귀빈'(귀찮은 빈대) 등 반전(反轉)과 해학을 담고 있었던 데 비해 요즘 줄임말은 '넌씨눈'(넌 ×발 눈치도 없냐) '은꼴'(은근히 ×린다) 등 욕설이나 성적(性的) 의미가 많다는 것이다.

김무성 한국교총 대변인은 "욕설인 줄 모르고 쓰는 줄임말은 부모가 차분하게 그 뜻을 설명해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국립국어원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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