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장 공백 사태가 40일을 넘겼지만 후임 인선을 해야 할 청와대 인사위원회가 단 한 번도 이 문제를 논의하지 않았다고 한다. 청와대 안팎에선 감사원장 후보자들에 대한 막바지 검증이 진행되고 있다는 얘기가 파다한데도 정작 청와대 인사위 위원인 수석 비서관들은 "우리는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결국 공식 기구인 청와대 인사위는 뒤로 밀린 채 박근혜 대통령의 별도 지시를 받은 누군가가 인선 작업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대통령의 인사가 잠시 개선되는 듯하더니 다시 대통령이 혼자 인사 하고 혼자 책임지는 방식으로 되돌아가는 모양이다.
과거 노무현·이명박 정부에 이어 이 정부도 청와대 인사위 설치와 활성화를 약속했다. 그것은 인사 인선 작업을 청와대 인사위로 시스템화하는 것이 인사 추천과 후보 선정, 검증 과정에서 한쪽 의견에 치우치거나 다들 아는 인사 대상의 결함이 검증되지 않고 그대로 노출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청와대 인사위가 제대로 움직이면 인사권자인 대통령 한 사람에게 모든 부담이 집중되는 위험도 막을 수 있다.
박 대통령도 이런 사실을 토로한 적이 있다. 박 대통령은 윤창중 사태 직후인 지난 5월 15일 "저 자신 굉장히 실망스럽다"며 "앞으로 인사위원회가 조금 더 다면적으로 검증하고 제도적으로 보완하고, 인사 자료도 차곡차곡 쌓으면서 상시적으로 (점검)하는 체제로 바꿔 나가고 있다"고 했다. 그 후 잠시 활성화되는 듯하던 인사위는 박 대통령이 관치(官治) 논란을 빚은 금융공기업 인사를 중단시키면서 식물 상태에 빠져버렸다.
청와대 인사위는 8월 이후에야 활동을 재개했지만 인사위가 1순위로 올린 공기업 인사가 그대로 낙점되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청와대 참모들은 되도록 인사 문제에 관여하지 않으려 피하고, 그런 일이 되풀이되자 감사원장 같은 정무적인 핵심 자리는 아예 대통령이 결정하는 것이지 자신들의 논의 몫이 아니라고 몸을 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정부 운영상 중요한 자리에 대한 인선을 청와대 공식기구에만 맡겨놓는다는 것은 현실적이지도 않고 옳지도 않다. 그러나 대통령이 혼자 생각해둔 사람을 비선을 통해 몰래 검증하는 방식에는 합리적 견제 장치가 작동할 공간이 없다. 역대 정부에서 어이없는 인사 실패는 이렇게 이뤄진 경우가 많았다. 박 대통령은 윤창중 사태 후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을 언제 또 하게 될지 나도 모르겠다"고 했었다. 이런 식이면 얼마 안 가 그 말을 또 하게 될 것 같다는 걱정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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