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3일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국방 예산 증가를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동북아의 안보 지형이 복잡하게 변하고 있다. 특히 한·일 관계가 정상회담 일정조차 잡지 못할 정도로 악화된 시점에서 미·일 군사 동맹의 강화가 한반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일본, 주변국 우려 해소해야"

정부는 미국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공개적으로 환영한다고 밝힌 이상, 이를 무조건 반대만 할 수는 없다고 보고 있다. 여기엔 미·일 양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추진되는 것을 우리의 힘으로 막을 수 없다는 현실적인 판단이 깔려 있다. 그 대신, 일본 내에서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헌법해석 변경을 주시하면서 우리 정부의 입장을 최대한 관철해나간다는 것이다. 정부 핵심 관계자는 4일 기자들과 만나 "일본의 정책 변화가 주변국들의 우려를 해소하면서 역내(域內)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투명하게 이뤄져야 한다"며 "정부는 앞으로 이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밝히겠다"고 말했다.

척 헤이글 미국 국방장관이 4일 일본 요코스카(橫須賀)의 미 해군 기지에 있는 USS 스테텀(DDG 63) 구축함에 올라 허리에 손을 올리고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정부는 미국이 미·일 동맹 강화를 계기로 한·미·일 군사동맹 체제를 만들려고 할 경우, 한국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는 "미국이 한국의 전시작전권 전환 재연기 요구를 받아들이는 대신 한국과 일본의 군사적 협력을 요구하고, 국방비 증액, 한국형 미사일 방어 체제(KAMD)와 미국의 미사일 방어 체제(MD)의 연계 등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는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확보가 당장 우리 안보를 위협하지는 않는 것으로 평가한다. 정부는 일본 자위대가 우리 영토나 영해에서 직접 작전을 펴는 것은 한국의 동의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또 일각에서는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갖게 되면 북한의 급변사태를 비롯, 우리의 안보 상황이 위기에 처할 때 후방 지원을 맡는 주일(駐日) 미군의 보급로가 안전해질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미·중 관계 악화… 북핵 공조에 악영향

이번 미·일 공동성명으로 미·중 관계가 악화될 가능성이 커질 경우, 이는 우리 외교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북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한·미·중 간 3각 협력이 영향을 받을 수 있어서 우리로선 불리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김열수 성신여대 교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일본과 중국이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싸고 현재 갈등상태에서 분쟁 상태로 넘어가는 것"이라며 "이 경우 우리는 미국·일본이냐 중국이냐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대응 시나리오

자칫 미·일 군사동맹이 한·미동맹보다 우선시되는 상황을 정부가 비상국면으로 인식하고, 미국과의 관계를 더욱 긴밀히 함으로써 우리의 입장을 관철해야 한다는 제언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미·일 동맹이 강화되는 흐름에서 한국이 배제되지 않도록 한국도 '한반도 방위에 있어서 우리가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는 메시지를 미국에 줘야 한다"며 "이를 위해 한국군 전력 구조 개편 등 개혁도 하루빨리 완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막후(幕後) 채널이 끊기다시피한 한·일 관계도 신속히 복구해야 한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센터장은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현실화되는 상황에서 우리도 자위대 작전 범위 등에 의견을 개진해야 한다"며 "역사 문제는 원칙적으로 대응하되 안보 문제는 유연한 자세로 일본과 협의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