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내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건설업자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9억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던 한명숙(69) 전 국무총리가 항소심에서는 실형을 선고받았다.

서울고법 형사 6부(부장판사 정형식)는 16일 한신건영 전 대표인 한만호(53)씨로부터 9억여원을 받은 혐의(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한 전 총리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2년과 추징금 8억 8302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1심과 항소심의 판단이 엇갈렸고, 한 전 총리가 현직 민주당 비례대표 의원인 점을 고려해 법정구속은 하지 않았다.

한 전 총리는 2007년 3월 “대통령 후보 경선 비용을 지원하겠다”는 한씨의 제의를 받아들인 뒤 3차례에 걸쳐 미화 32만 7500달러와 현금 4억 8000만원, 1억원권 자기앞수표 1장 등 9억여원을 받아 챙긴 혐의로 2010년 불구속기소됐다.

검찰은 당시 한 전 총리가 경기도 고양시 자신의 아파트 부근 도로에서 현금·달러·수표를 담은 여행용 가방을 가지고 온 한씨를 만났으며, 가방을 넘겨받은 뒤 자신의 승용차에 싣고 집으로 돌아갔다고 밝혔다.

앞서 1심 재판부는 지난 2011년 10월 “9억원의 금품수수를 인정할 수 있는 유일한 직접 증거는 한씨의 검찰 진술뿐인데 일관성과 합리성이 없는 부분이 있고, 진술 자체에 추가 기소를 피하려는 이해 관계가 있는 것으로도 보여 신빙성이 있다고 볼 수 없다”면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또 “한씨의 장부와 채권회수 목록은 비자금을 마련했다는 증거는 되더라도 한 전 총리에게 전달했다는 금품수수의 증거가 되지 못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채권회수목록과 장부 등에 기재된 내용을 근거로 직접 증거인 한씨 검찰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해 유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돈을 준 한씨의 검찰 진술이 원심에서 번복됐더라도 다른 증거에 의해 신빙성이 인정된다”며 “한 전 총리의 여동생이 한씨의 1억원짜리 수표를 전세자금으로 사용한 점, 한씨에게 2억원을 반환한 점, 한씨가 한 전 총리에게 3억원 반환을 요구한 점 등을 볼 때 공소사실이 충분히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이어 “대선 후보로서 당내 경선과정에서 9억원이라는 거액의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것은 죄질이 무겁다”며 “또 받은 돈 일부를 사적으로 썼으면서도 책임을 통감하는 자세를 보이지 않고, 비서인 김모씨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태도 등을 고려하면 엄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한 전 총리는 선고 직후 기자회견에서 “판결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며 “법리적인 판결이라기보다 정치적인 판결”이라고 상고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