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 조선경제i 대표

어렸을 적부터 빵에 대한 추억이 많다. 초등학교 시절, 여름에는 삼립 크림빵이, 겨울에는 호빵 기억이 많이 난다. 중·고등학교 시절엔 샤니가 만든 보름달이 인기였고, 태극당과 고려당은 만남의 장소로 유명했다. 대학 시절엔 신라호텔에서 분리한 신라명과가, 88올림픽 이후에는 크라운 베이커리가 대세였다. 그 후엔 파리바게뜨 빵이 싸고 맛있어서 자주 이용한다. 특히 얼마 전 나온 무설탕 식빵을 좋아한다.

하지만 지방을 여행할 때는 프랜차이즈 빵집을 찾지 않는다. 대전을 갈 때면 은행동에 위치한 50년 전통 성심당을 간다. 얼마 전 대전 KTX 역사에도 분점을 열었다. 대전역을 가본 독자라면 냄새가 고소한 튀김 소보로를 줄을 서서 기다리는 장면을 목격했을 것이다. 부드러운 빵 속에 부추와 고기를 다진 소를 넣은 판탈롱 부추빵도 인기다. 전주에 가면 한옥 마을 옆 중앙사거리에 위치한 PNB(풍년제과)가 내놓은 초코파이가 최고다. 초콜릿 케이크 속에 달지 않은 딸기 시럽이 들어가 있는데, 냉동고에 얼렸다가 우유랑 먹으면 맛이 기막히다. 전북 남원에 있는 명문제과는 겉모습은 허름해도 소보로 공갈빵(속이 빈 소보로) 같은 재미있는 빵이 즐비하다.

군산 중앙로에 위치한 70년 역사 이성당은 한국 빵집의 지존 격이다. 쌀로 만든 단팥빵이 유명한데 1인당 판매 개수를 제한해도 항상 빵이 모자란다. 개인적으로는 아삭아삭한 돼지고기와 양배추가 듬뿍 들어간 야채빵을 더 좋아한다. 빵집 안 고객 숫자를 제한하기 때문에 이성당 밖에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입장을 기다리는 고객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강한 동네 빵집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수십년 동안 질이 좋은 재료만 골라서 만든 빵과 과자를 싸게 판다는 것이다. 또 새로운 메뉴 개발에 고심하고 지역사회에 기여한다. 예컨대 성심당은 그날 팔다 남은 빵을 불우 이웃에게 나눠준다. 거창한 프랜차이즈를 만들기보다 분점 형태로 사업을 발전시켜 나간다. 이런 동네 빵집 근처에는 파리바게뜨나 뚜레쥬르 같은 대형 프랜차이즈는 맥도 못 춘다.

이성당이나 성심당 모두 정부가 만든 대형 프랜차이즈 규제안 덕분으로 성장하지 않았다. 또 정부로부터 영세 상인 지원금을 받은 것도 없다. 오직 우직하고 정직하게 빵 하나에 매달려 성공한 것이다. 지금은 대형 프랜차이즈가 된 파리바게뜨도 1945년 을지로 4가에 세워진 상미당이라는 작은 빵집에서 출발했다.

최근 폐업을 선언한 크라운 베이커리는 한때 프랜차이즈 업소만 800개에 달하던 대형 빵집의 최강자였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미각과 판단은 언제나 냉정하고, 옳았다. 좋은 재료로 맛있는 제품을 싸게 내놓은 빵집만 시장에서 살아남고, 그러지 못하면 가차없이 정리된다.

이 점에서 동반성장위나 공정거래위가 제빵이나 외식 업체를 운영하는 프랜차이즈를 자꾸 인위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참 한심한 일이라는 생각이다. 지하철역 100m 안에는 업소를 내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가맹점 간 거리도 일률적으로 제한하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심지어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에 국내에서는 더 이상 출점을 중단하라고 하고, 해외로 나가라는 발상도 어이없다. 여기다 규제는 국내 업체에만 적용하고 외국 업체는 예외로 둔다는 것은 더더욱 난센스다.

대구 서문시장 한구석에는 납작 만두와 쫄면을 파는 미성당이 있다. 이 음식점 사장님은 납작 만두만 평생 연구해왔다. 그는 가장 맛있고 좋은 납작 만두를 전국적으로 팔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박근혜 정부 창조경제란 규제와 경쟁 제한을 지상 목표로 삼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규제를 없애고 경쟁을 자극해 젊은이들에게 꿈을 갖고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