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식의 브레인 스토리][49] 유대인 증오한 유대인, 한국 증오하는 한국인

조선일보
  • 김대식 · KAIST 교수·뇌과학
    입력 2013.09.10 03:02

    유대인을 증오했던 유대인 바이닝거.
    유대인을 증오했던 유대인 바이닝거.
    "…유대인에겐 도덕성이라는 위대함이 없다… 유대인에겐 선과 악의 차이가 없으며… 곱슬곱슬한 머리카락만으로도 볼 수 있듯이 유대인은 인종적으로 흑인에 가깝다…"

    글로 쓰기 민망할 정도로 터무니없는 반(反)유대주의적 망언들이다. 누가 이런 말을 한 것일까? 1903년 23세 나이에 자살한 오스트리아 철학자 오토 바이닝거(Otto Weininger)가 쓴 '성과 성격'이라는 책의 내용이다. 그는 현대사회의 모든 문제가 '비생산적인' '여자'란 성(性)에서 온다고 주장했다. 여성 혐오주의자에 반유대주의자였다. 특이한 점은 그 자신도 유대인이었다는 것이다. 히틀러가 바이닝거를 "만나본 유대인 중 유일하게 '제대로' 된 사람"이라고 칭찬했을 정도로 그의 유대인 혐오는 유명했다. 왜 유대인인 바이닝거는 유대인을 그토록 증오한 것일까? 바로 19세기 유럽에서 자주 볼 수 있던 유대인들의 '자기혐오'라는 반(半)정신병 증세다. 수백년간 유럽인들의 차별과 무시가 마치 '스톡홀름 신드롬'같이 유대인 자신들에게 유대인 혐오를 만들어내게 했다는 것이다.

    "북한의 모든 행위는 애국적, 남한은 반역적이다."

    대한민국 한 국회의원의 발언이 논란이 되고 있다. 물론 글로 쓰기 민망할 정도로 터무니없는 망언이다. 단순하게 보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대한민국을 증오하는 '바이닝거식' 자기혐오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조금 더 깊게 생각해 보자. 바이닝거의 주장은 현실을 중시하는 영국식 경험주의와는 달리 개념과 이론이 사실보다 더 우월하다고 주장하던 19세기 독일식 철학의 한계였다. 하지만 이론은 현실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 현실을 대체해서는 곤란하다. 혀를 움직이기만 하면 만들 수 있는 게 '말'인데 무슨 말을 못 하겠는가? 그래서 볼테르(Voltaire)는 '신성로마제국'을 "성스럽지도, 로마답지도, 제국적이지도 않다"고 하지 않았던가? 영국은 제대로 된 헌법조차 없는 왕국이고, 짐바브웨(Zimbabwe)는 '랭커스터 헌법'이라는 멋진 법을 가진 공식적 공화국이다. 하지만 개인의 자유, 인권, 민주적 절차… 모든 면에서 영국이 짐바브웨보다 더 민주적이고 공화국적이다.

    김대식 교수
    김대식 · KAIST 교수
    그렇다면 나라의 기원과 역사는? 해방 후 친일파 출신 인사들이 남한에서 출세하고 일부 독립운동가들이 북한을 선택한 건 팩트다. 하지만 과거가 영원히 현재의 도덕적 기준이어야 할까? 물론 아니다. 영국 왕조의 조상이 약탈과 강간으로 유명하던 바이킹 출신이라고 오늘날 영국인의 자유가 무의미해지는 게 아니며, 짐바브웨의 독재자 무가베(Robert Mugabe)가 독립운동가였다는 사실이 오늘날 그의 독재를 정당화할 수 없다.

    '자주' '민족' '우리식'…. 다 좋은 말들이다. 하지만 말은 말일 뿐, 현실은 굶어 죽는 아이들이고, 팩트는 14번째 수용소다. 현실의 가장 믿을 만한 증인은 언제나 '현실 그 자체'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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