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성추문 검사' 전모(31)씨의 항소심 공판이 열린 서울고법 403호 법정.

작년 말 전씨에게 절도 혐의로 수사를 받던 중 검사실·모텔에서 성적 접촉을 가진 A(여·44)씨가 증인으로 나섰다.

전씨는 지난 4월 1심에서 "직접적인 직무 관련성이 있는 주임검사로서 성행위라는 뇌물을 받았다"며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항소심에서 전씨는 "여성 피의자가 육탄 공세를 편 것이고 대가성은 없었다"고 주장해 왔다. A씨는 여전히 "전씨에게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라고 말하고 있다.

이날 A씨는 커다란 회색 상의에 검은 청바지, 차분한 갈색 단발머리에 뿔테 안경을 쓰고 재판에 임했다. 방청객들은 수척한 A씨의 모습을 보며 수군거렸다. 오후 6시쯤 재판이 끝나자 그녀가 커다란 가방을 들고 화장실로 사라졌다. 15분쯤 지나 법원을 나서는 A씨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가발 속에는 긴 웨이브 머리가 숨어 있었다. 안경을 벗은 A씨는 검은 미니스커트에 검은 반투명 스타킹, 하이힐을 신은 화려한 모습으로 '증인 패션'을 쇼핑백에 넣고 사라졌다.

일부러 초라하게 변신한 것이냐는 질문에 A씨 변호인은 "재판 내용이 민감하기도 하고, 취재진이 얼굴을 알아볼까 봐 갈아입을 옷을 챙겨온 것"이라고 답했다.

대법원이 변론 TV 생중계를 도입한 가운데 법정 안 풍경도 점점 '쇼잉(Showing·보여주기) 시대'로 바뀌고 있다. 주장을 입증하는 데 각종 도구와 매체를 활용하는 검사와 변호사, 사건 당사자와 증인이 크게 늘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정계와 재계 인사들도 선처를 바랄 때 휠체어를 타고 법정에 출석하지 않느냐"며 "피고인이 불쌍한 얼굴로 법정에 나타나도 밖에 나가자마자 멀쩡하게 걸어가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실체를 꿰뚫어 보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사건 관계인들이 복장과 행색을 꾸미는 '배우형'이라면, 검사·변호사는 프레젠테이션 때문에 씨름하는 '잡스형'이다. 서울중앙지검 검사는 "정해진 기간 안에 사건 수백 건을 처리해야 하는 판사들은 장황한 변론을 하면 짜증을 내는 경우가 많다"며 "변호인들 사이에서 PT 변론이 유행하면서 우리도 구술(口述)만으로는 버티기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형 로펌에서는 3D 동영상을 만들거나 성우를 섭외해 음성 녹음을 하기도 한다. PT 전문 디자이너도 채용한다. 이영욱(42) 변호사는 의뢰인의 요청으로 '만화 변론'을 시작했다.

3년 전 사기 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피고인이 이 변호사에게 "사실 관계가 워낙 복잡해 아무리 설명해도 판·검사가 이해를 못 한다"며 만화 변론을 요청했다. 이후 영업 비밀 유출·특허 소송에서도 만화를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