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식의 브레인 스토리] [48] 불평등하게, 다르게 태어나는 뇌

조선일보
  • 김대식 KAIST교수·뇌과학
입력 2013.09.03 03:23

김대식 KAIST교수·뇌과학
김대식 KAIST교수·뇌과학
세금을 많이 걷어 당장 복지를 늘리는 게 최선의 방법일까, 아니면 세금을 낮추고 투자를 늘려 지속적 성장을 유도하는 사회가 장기적으로 더 행복할까? 쉽지 않은 질문이다. 단순히 경제학적·수학적 증명을 통해 내릴 수 있는 결론이 아니라, 개인적 선호도가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의 선호도 그 자체는 객관적이지도 않다. '내'가 복지 또는 낮은 세금을 선호하는 이유가 어쩌면 복지 또는 낮은 세금을 통해 혜택을 받을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일 거라는 기대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지금 이순간 나의 개인적 상황과 무관한 '객관적' 선호도란 존재하는 것일까.

하버드 대학의 도덕 철학자 롤스(John Rawls)는 '무지의 베일'이란 개념을 도입했다. 내가 어떤 사람으로 어떤 가정에서 태어날지 알 수 없는 상황을 상상한 후 나의 사회적 선호도를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종차별 법의 정당화를 결정하기 전이라면 '만약에 내가 어떤 인종으로 태어나게 될지 모를 거라는' 상황 아래서 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뇌는 출생 전에 이미 많은 환경적 영향을 받는다.
뇌는 출생 전에 이미 많은 환경적 영향을 받는다.
우리에겐 '어떤 세상에 태어나게 될지 모른다'는 그 전제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 나왔다. 핀란드 헬싱키 대학 후오티라이넨(Minna Huotilainen) 교수 팀은 출생 전 태아에게 하루 15분 정도 특정 소리를 변형시켜 가며 듣게 했다. 출생 후 다른 아이들과 비교한 결과, 출생 전 청각 트레이닝을 받은 아이들의 뇌가 훨씬 더 활발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과학적 증명이 좀 더 필요한 결과지만, 흥미로운 해석을 해볼 수는 있다. 임신 중 엄마의 건강과 영양 상태가 태아의 육체적 발달에 큰 영향을 준다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뇌도 육체의 한 부분이기에 환경적 조건에 영향을 받을 것이다. 이번 연구의 핵심은 매우 섬세한 환경적 변화마저도 발달하는 뇌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소리의 변화' 같은 미세한 환경적 조건들이 발달하는 뇌의 구조 그 자체를 좌우할 수도 있다.

헬싱키 대학 연구진은 출생 전 청각 트레이닝을 통해 언어장애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희망적 기대를 제시했다. 하지만 우리는 반대로 비관적 해석을 해볼 수도 있다. 우리 뇌의 선호도 그 자체가 태어나기 전 부모님의 경제적 조건과 우리가 태어날 나라의 환경적 상황을 통해 이미 정해질 수 있지 않을까. 결국 롤스가 말하는 '미지의 베일은' 불가능하며, 우리는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각자 불평등하게 다른 베일을 머리에 쓰고 세상을 인식하게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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