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객전무가 신호 착각… "무궁화호 1m만 더 갔으면 대형慘事 났을 것"

입력 2013.09.02 03:01 | 수정 2013.09.02 09:32

[아찔했던 대구驛 사고 재구성]

시속 110㎞ 달리던 상행 KTX 무궁화호와 스치며 8輛 탈선… 부산행 KTX와 또다시 충돌
선로 신호등 잘못 본 역무원… 노사갈등에 휴일 代打, 근무7년 만에 여객전무 업무 투입
대구역 관제실은 무궁화호에 KTX 통과 사실도 안 알려줘

지난 31일 대구역에서 승객 1366명이 탄 열차 3편이 3중 충돌한 아찔한 사고가 발생했다.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고 승객 4명만 경상을 입었지만, 자칫 대형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사망자 없는 것은 천우신조"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와 경찰 조사에 따르면, 이날 오전 7시 12분 부산발 서울행 무궁화호 열차가 대구역에 도착했다. 선로를 따라 설치된 신호등엔 '멈춰라'는 뜻의 빨간불이 들어와 있었다. 하지만 여객전무(승무원) 이모(56)씨는 바로 옆 상본선(上本線) 신호등의 파란불을 보고 착각해 기관사 홍모(43)씨에게 출발 무전을 보냈다. 기관사 홍씨는 이씨 말을 듣고 빨간 신호등을 확인하지 않은 채 오전 7시 13분 열차를 출발시켰다. 무궁화호가 출발한 순간, 승객 464명을 태운 부산발 서울행 KTX 열차가 시속 110㎞ 속도로 대구역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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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차 옆 부분 긁혀나간 KTX 31일 오전 7시쯤 대구역에서 서울로 출발하던 무궁화호 열차가 이곳을 지나던 서울행 KTX 열차와 스치면서 충돌하고 나서, 이어 부산행 KTX 열차와도 부딪히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은 무궁화호와 스치면서 열차의 옆 부분이 크게 파손된 서울행 KTX 열차. /남강호 기자
31일 오전 대구역에서 서울로 출발하던 무궁화호 열차와 이곳을 지나던 KTX 상행선 열차가 추돌, 2명이 부상했다. 두 열차는 선로를 벗어나 이날 대구역 일대 열차 운행이 전면 중단됐다. 사고 직후 서울에서 부산으로 향하던 또다른 KTX 하행선 열차가 탈선한 KTX 열차의 옆부분을 부딪혀 2차 사고가 발생했으나, 다행히 하행선 열차가 미리 속도를 줄여 큰 피해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사진은 동대구역에서 승객들이 환불 및 다른 표라도 구하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 /남강호 기자

무궁화호가 출발한 사실을 뒤늦게 안 대구역 관제실은 기관사 홍씨에게 "열차를 바로 멈추라"고 명령했다. 홍씨는 급히 열차를 정지시켰지만 KTX가 달려오던 상본선 선로를 1m가량 침범한 지점에 멈췄다.

오전 7시 14분. 홍씨가 손쓸 겨를도 없이 무궁화호 기관차는 부산발 서울행 KTX 열차와 충돌했다. KTX의 힘에 밀려 무궁화호 기관차는 선로를 벗어났고, KTX 객차 8량이 오른쪽으로 탈선했다. 때마침 서울발 부산행 KTX 열차가 들어왔다. 시속 40㎞까지 속도를 줄였지만 열차는 탈선한 KTX 객차와 부딪혀 객실 벽면이 크게 파손됐다.

두 번의 충돌 모두 스치듯 부딪혀서 다행이지, 하마터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무궁화호 열차 275명, 서울행 KTX 464명, 부산행 KTX 627명 등 세 열차에 탄 승객은 모두 1366명이었다.

철도 전문가들은 "무궁화호가 만약 1m라도 더 나갔으면 서울행 KTX와 심하게 충돌하는 것은 물론 무궁화호 객차까지 탈선해 대형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면서 "사망자가 나오지 않은 것이 천우신조(天佑神助)"라고 말했다.

느슨한 근무 기강이 사고 원인

1차 조사 결과, 이번 사고는 대구역 관제실과 여객전무, 기관사의 세 실수가 겹치면서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고 조사 관계자는 "신호 시스템과 기관차 등에선 문제가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며 "느슨했던 대구역 관제실과 여객전무, 기관사의 근무 기강이 사고 원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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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역 사고 재구성 그래픽
열차는 선로 앞 신호기 신호에 따라 대기하거나 출발한다. 이는 여객전무가 확인해서 기관사에게 일러 준다. 그런데 무궁화호 기관사에게 출발 신호를 준 여객전무 이씨는 사고조사위 조사에서 "신호를 착각했다"고 잘못을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본부 직원인 이씨는 1982년 입사해 10년간 여객전무로 일했지만 2006년 이후 사무실 근무만 하다 지난 7월 말부터 여객전무로 투입됐다고 코레일은 전했다. 원래 해당 열차에 타야 하는 여객전무가 휴일 근무를 거부해 이씨가 이날 '대타'로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철도노조는 여객전무와 역무원을 순환근무시키려는 코레일의 인사 방침에 반발, 지난 7월 24일부터 휴일 근무를 거부하고 있다. 이에 휴일 열차엔 과거 여객전무로 일했던 내근 직원들이 한 달째 대신 열차를 타고 있다. 그래서 철도 전문가들 사이에선 "터질 사고가 터졌다"는 얘기도 나온다.

한편 기관사 홍씨는 "여객전무가 출발하라고 해서 출발했다"고 진술했다고 국토부는 밝혔다. 이는 옆에 탄 조수가 출발하라고 하니까 운전자가 신호등도 안 보고 가속기를 밟은 격이다. 사고 조사 관계자는 또 "대구역 관제실이 해당 무궁화호에 KTX가 지나간다는 사실을 미리 알려주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기관사 홍씨가 방심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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