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이 만난 사람] 한국판 '포레스트 검프'… 배 만드는 기능공 심재덕씨

조선일보
  • 최보식
    입력 2013.09.02 03:03

    "안 쉬고 40시간을 뛰어본 적 있는가… 지금까지 빠진 발톱 개수만 300개"
    마라톤 풀코스 210번 완주… 이 중 207번을 3시간대 진입
    '안개처럼 와 기록을 세우고 되돌아간 未知의 선수'
    대우조선에서 배 만드는 일
    '기관지 확장증'을 진단받고 코피 흘리며 새벽마다 달려 지금도 냄새는 맡지 못해

    "거제 촌놈입니다. 지금까지 20년 동안 저는 대한민국 아마추어 마라톤계의 전설을 써내려가고 있습니다. 혹시 제 삶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도전이 되지 않을까요?"

    이런 이메일을 보낸 뒤, 거제도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올라온 심재덕(44)씨는 짧은 머리에 마라톤 복장이었다. 등에는 배낭을 메고 있었다.

    그는 지금껏 마라톤 대회 풀코스(42.195㎞)만 210번을 완주했다. 이 중 207번은 '서브-3(3시간 이내의 기록)'를 달성했다. 아마추어 마라톤계에서는 전설 같은 기록이라고 한다. 그는 토요일 마라톤 시합에서 뛰고 이어 일요일에 다른 지역에서 열리는 마라톤 시합에 출전해, 이틀 연달아 우승한 적도 여섯 번 있었다(국내 마라톤 대회가 이렇게 많은 것도 놀랍다).

    심재덕씨는
    심재덕씨는 "밤 산길에서 발 감각을 예민하게 만들기 위해 눈 감고 달리는 연습도 한다"고 말했다. / 최보식기자
    그의 진면목은 도로마라톤이 아니라 이보다 훨씬 길고 험한 산길을 뛰는 '울트라 산악마라톤'에 있었다. 산을 걸어서 올라가도 숨이 찬데, 산속에서 하루 두 시간쯤 눈을 붙이고 며칠을 뛴다는 것은 상상도 되지 않았다. 그는 40시간 동안 계속해서 뛴 적이 있다고 했다.

    그는 미국 잡지 '울트라 러닝(ultra running)'의 표지 인물로 실렸고 '싱가포르 마라톤 대회'의 포스터와 현수막에 등장했으며, 스포츠 신발의 광고 모델로도 나왔다. 하지만 그는 거제도 대우조선에서 27년째 근무하고 있었다. 그는 국가대표도, 기업체에 소속된 프로선수 출신도 아니었다. 공고(工高)를 나와 배를 만드는 기능공이었다.

    그는 직장을 다니면서 혼자서 21년간 쉬지 않고 뛰었다. 평일에는 출근 전 한 시간, 퇴근 뒤 두 시간씩 뛰었고 주말에는 국내 대회를 찾아가 뛰었다(올해는 지금껏 40회 출전). 해외대회는 일 년에 서너 번 휴가를 내고 출전했다.

    ―왜 그렇게 뛰는가?

    "달리기 시작한 것은 스물네 살때부터다. 그 전까지는 달리기의 '달' 자(字)도 몰랐다. 학교 운동회 때도 3등 안에 들어본 적이 없다. 처음에 나는 살기 위해 뛰었다. 호흡곤란 증세를 앓아 숨이라도 좀 편히 쉴 수 있을까 해서 달리게 됐다."

    충북 괴산의 산골에서 자란 그는 공고 3학년이던 1987년, 대우조선에서 실습을 한 다음 취직하게 됐다. 그는 선실 바닥의 타일과 미장 작업을 했고, 잠수함을 만드는 작업장에서도 일했다. 요즘은 용접기 수리 업무를 맡고 있다.

    "조선소에서는 유리섬유와 먼지, 화공약품 냄새 등으로 마스크를 쓴 채 하루 10시간쯤 일한다. 작업 환경 때문인지 내 체질 때문인지 나는 거의 냄새를 맡지 못한다. 술·담배도 안 하는데 언제부터인가 호흡이 곤란했다. 숨이 막혀 작업장을 벗어나면 바보처럼 늘 입을 벌리고 지냈다."

    그는 1993년 '기관지 확장증'을 진단받았다. 허파의 수축과 팽창을 통해 호흡이 이뤄지는데, 허파 속 기관지가 확장돼 이런 작용이 잘 안 되는 증상이다.

    "의사는 '수술해도 낫는다는 보장은 못 하겠다'고 했다. 아직 젊은데 남은 삶을 헉헉거리며 보낼 수가 없었다. 달리면 허파 기능이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절박함에서 시작했다. 처음에는 1㎞도 못 달렸다. 코피를 많이 흘렸다. 달리다 죽으나 아파서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에 멈추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호흡이 좋아졌고 삶의 희망도 보였다."

    싱가포르 마라톤 대회 포스터 인물로 등장
    싱가포르 마라톤 대회 포스터 인물로 등장
    그해 근로자의 날에 사내 3㎞ 마라톤 행사가 열렸을 때 그는 예상하지 못한 '1등'을 했다. 한 달 뒤 회사체육대회에서 10㎞ 마라톤 부문 1등을 차지했고, 시민의 날 행사 10㎞ 마라톤 대회에서도 우승했다.

    "달리기를 시작한 해에 세 번이나 1등을 한 것이다. 나는 공부도 못했고 그때까지 살면서 '1등'이라는 걸 해본 적이 없었다. 내게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1995년 조선일보 춘천마라톤 대회에서 그는 풀코스를 2시간39분05초에 뛰었다. 첫 출전에 '서브-3'를 기록한 것이다. 그 뒤 14년 만에 그는 국내 최초로 '서브-3' 100회를 달성했다고 한다.

    ―일찍 마라톤을 했으면 황영조나 이봉주 같은 뛰어난 선수가 됐을까?

    "스물네 살에 숨을 좀 쉬기 위해서 한 것인데, 너무 늦게 이런 재능을 발견했던 셈이다."

    ―국가대표급과 실력을 비교하면?

    "기록으로는 2시간10분대에 뛰어야 프로다. 내 최고기록이 2시간29분11초이니, 프로에서 보면 C급이다. 나는 가족 생계를 위해 직장에 다니는 것이 우선이고, 달리기는 좋아서 하는 것이다. 하지만 도로마라톤이 아닌 울트라 산악마라톤에서는 세상 누구에게도 질 생각이 없다."

    ―시합에 나가면 직장에서 후원을 해주지 않나?

    "직장은 나를 일로 고용했지, 스포츠로 고용한 것이 아니다. 회사에 다니게 해주는 것만 해도 큰 지원이다. 마라톤 시합에 출전한다고 해서 근무를 빼먹은 적이 없다. 일년에 서너 차례 해외 원정을 나갈 때면 휴가를 내서 간다. 남들은 돈 쓰고 미친 짓 한다고 하지만, 내가 좋아서 그러는데 어쩌겠나."

    ―어떻게 해서 울트라 산악마라톤까지 하게 됐나?

    "뛰다 보니 나 자신이 얼마나 더 뛸 수 있는지 궁금했다. 한계까지 가보고 싶었다고 해야 하나. 2000년인가 '북한산 산악마라톤 대회'가 있다는 걸 알고 출전했는데, 2년 연속 우승했다."

    그는 일본의 '하세가와 츠네오(산악인) 산악마라톤 대회'에 출전하는 대표로 뽑혔다. 그에게는 첫 해외 원정이었다. 전체 71.5㎞ 구간에서 그는 선두 경쟁을 벌였다. 마지막 3㎞ 구간에서 역전을 당했다. 그의 기록은 9시간45분이었다.

    "그때만 해도 산악마라톤의 경험이 부족했다. 요즘 같으면 '에너지 젤(글리코겐 성분으로 근력 보충제)' 등을 준비했을 텐데, 나는 떡과 초콜릿만 갖고 갔다. 막판에 힘이 떨어져 속도를 내지 못했다."

    귀국행 비행기에서 그는 다음에 꼭 '하세가와 우승컵'을 갖고 오겠다고 다짐했다. 4년 만에 다시 도전했을때 그는 7시간52분으로 우승했다. 험한 산길을 평균 시속 9㎞로 뛴 것이다.

    "처음 출전했을 때보다 2시간 가까이 단축했던 셈이다. 누구도 그 코스에서는 8시간 안에 주파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이 대회에서 내 기록이 깨지지 않았다."

    2006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100마일(160㎞) 산악마라톤'도 결코 잊히지 않는 시합이었다. 그는 항공료를 아끼기 위해 비행기를 세 번 갈아타고 워싱턴에 도착했다. 대회 장소는 거기서 차로 3시간쯤 떨어진 산이었다. 도착 다음날 출전이었다. 시차 적응이나 코스 답사도 없었다.

    "전체 구간의 절반쯤 뛰었을 때 선두 선수를 따라잡았다. 그는 미국에서 '올해의 울트라 러너'로 선정된 칼 멜츠 선수였다. 그와 시소 경쟁을 벌이며, 18분 차이로 우승했다. 17시간40분45초로 역대 최고 기록이었다. 나는 직장에 복귀해야 했기 때문에 바로 그날 비행기를 탔다. 미국 매스컴에서는 '안개처럼 왔다가 기록을 세우고 되돌아간 알려지지 않은 선수'라고 나왔다, 그해 '울트라 러닝' 잡지의 표지에도 등장했다."

    심재덕씨와 최보식 선임기자
    그는 이달 8일부터 15일까지 열리는 '이탈리아 산악마라톤 대회(토르데강스)'에 출전한다. 알프스 산군(山群) 속으로 연결된 세계 최장의 333㎞ 코스다. 2년 전 그는 이 대회에서 사흘 반 걸려 283㎞까지 뛰었다. 초반 오버 페이스와 고소(高所)로 인해 포기했던 시합이다.

    ―산악마라톤을 위한 특별 훈련이 있나?

    "사람들은 달리기를 다리로만 뛴다고 생각한다. 실제로는 상체와 어깨가 더 중요하다. 팔을 한 번 흔들어야 다리도 한 번 나간다. 팔을 크게 흔들면 보폭도 넓어진다. 어깨를 단련시키기 위해 아침마다 50회쯤 턱걸이를 한다. 또 산길에서는 시야가 좋아야 한다. 산악마라톤은 눈으로 달린다고 말한다."

    ―밤에는?

    "헤드랜턴을 켜고 뛴다. 밤 산길에는 발을 헛디뎌 사고 위험이 높다. 평소에 발의 감각을 예민하게 만들기 위해 눈 감고 달리는 훈련을 한다."

    ―며칠을 달리는 동안 잠과 휴식은 어떻게 하나?

    "대회 주최 측에서 체크 포인트마다 샤워시설과 야전침대 등을 둔다. 필요하면 휴식을 취하고 옷과 신발을 갈아신기도 한다. 잠도 얼마든지 잘 수 있지만 그만큼 기록이 늦어진다. 나는 하루 두시간쯤 자고 계속 뛰었다. 40시간을 연속적으로 뛴 적도 있었다."

    ―평소 무얼 먹어야 그런 체력이 만들어지나?

    "하루 세끼 밥은 반 공기씩 먹는다. 대신 2시간마다 떡과 과일을 조금씩 먹는다. 대회를 앞두면 영양식으로 오리탕을 먹는다. 시합 중에는 '에너지 젤'을 먹고 전해질 함량이 높은 스포츠 드링크를 마신다."

    ―산속에서 탈진하거나, 길을 잃고 고립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나?

    "코스 표지는 해놓았다. 산속에 방목된 소들이 표지를 씹어버려서 몇몇 선수가 길을 헤맸던 시합도 있었다. 나는 곰을 만나기도 했다. 비상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선수들은 각자 배낭에 물 1리터, 컵, 에너지 젤, 랜턴, 담요, 호루라기, 비옷, 전화기 등을 의무적으로 넣고 뛰어야 한다."

    ―이렇게 오래 뛰면 무릎 연골이 닳거나 고장 날 것 같은데.

    "나는 아직 탈이 없다. 산의 내리막길에서 다리를 쭉 펴서 뛰면 연골 손상이 심하다. 무릎을 약간 구부려 굴러간다는 느낌으로 달린다. 개나 말이 무릎을 구부려서 뛰는 것처럼."

    ―그만 뛸 때가 됐다는 생각은 안 드는가? 뛰지 않고 걷든지….

    "나는 걷는 게 훨씬 더 힘들다. 걸으면 지치지만 뛰면 기분이 좋다. 세상 사람들은 왜 저러느냐고 이해를 못 하겠지만, 나는 뛰면서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언제까지 뛰느냐고 물으면 죽을 때까지라고 답하겠다. 내가 좋아하는 말이 '한계는 없다. 내 한계는 내가 정한다'는 것이다."

    그의 발톱은 왼쪽 엄지 발톱을 빼고는 성한 게 없다. 뭉개지거나 빠져 있다. 달리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빠진 발톱의 개수는 300개가 넘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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