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군(創軍) 이래 최대로 8조3000억원 규모 무기 도입 사업인 공군 F-X(차기 전투기) 사업이 진퇴양난(進退兩難)에 빠졌다. 레이더에 거의 잡히지 않는 스텔스 등 성능 기준에 맞추자니 돈이 부족하고, 돈에 맞추자니 전투기를 쓸 공군이 희망하는 성능 기준을 맞추기 어렵게 된 것이다. 군 안팎에선 엄청난 후폭풍이 불가피하다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8조3000억원 예산 산정부터 삐걱

문제점은 지난 16일 진행된 최종 입찰 과정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3개 후보 기종 중 유일한 5세대 스텔스 전투기인 미 록히드마틴사의 F-35A, 유일한 실전 배치 전투기인 유럽 EADS사의 타이푼은 가격이 사업 예산을 초과해 사실상 탈락했다. 아직 개발되지도 않은 미 보잉사의 F-15SE만 예산 범위 내 가격을 제안해 다음 달 중순쯤 기종 선정을 위해 열릴 방위사업추진위(방추위)에 사실상 단독 후보로 올라가게 됐다.

전문가들은 2010년 예산 8조3000억원이 결정됐을 때 이미 난관이 예고됐다고 말한다. 당시 국방부 산하 국책 기관은 사업 참가가 예상됐던 록히드마틴, 보잉, EADS 등으로부터 고성능 전투기 60대를 도입하는 데 드는 돈이 얼마나 될지 추정치를 받았다. 이 기관은 예상 가격 평균치와 협상을 통한 가격 하락 가능성을 종합해 예산 8조3000억원을 산정했다. 그러나 오히려 국회 등에서 이 예산으로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이어졌다. 2011년 국회 국방위 전문위원실은 고성능 전투기 60대를 도입하려면 정부가 산출한 예산보다 1조8000억원가량이 부족해 사업 차질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공군 차기전투기(F-X)사업 진퇴양난 상황. 차기전투기(F-X) 사업 일지.

지난해 1월 F-X 사업에 본격 착수하기에 앞서 방위사업청과 공군 사이엔 요구 성능(ROC)을 둘러싼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다. 스텔스기를 원했던 공군은 요구 성능 조건에 강력한 스텔스 성능을 포함했지만 방사청은 이 조건을 대폭 완화했다. 공군 요구대로 할 경우 F-35만 합격선에 들고 F-15SE나 타이푼은 탈락할 수밖에 없어 경쟁 체제가 만들어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F-X 사업은 이후에도 우여곡절을 거치며 두 차례 연기됐다.

1차 입찰 후 꼬이기 시작

지난달 초 1차 가격 입찰 때부터 본격적으로 이번 사업이 꼬이기 시작했다. 지난 6~7월 총 55회에 걸쳐 실시된 가격 입찰 결과 어느 업체도 예산 범위 내 가격을 제시하지 못했다. 방사청은 예산의 20% 범위 내에선 국회 승인 없이 증액이 가능하다는 규정에 기대를 걸고 기재부에 예산 증액을 타진했지만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얻었다.

방사청은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공군 및 몇 년을 준비해온 참가 업체의 반발 등 때문에 지난 12~16일 최종 가격 입찰을 실시했다. 그 결과 미 F-15SE만 예산 범위 내에 들어와 사실상 단독 후보가 된 것이다.

방사청은 예산 증액이 불가능해, 예산 범위 내에 들어와야만 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이어서 F-X 본래의 취지나 공군의 희망 사항 등은 무시돼 주객(主客)이 전도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방사청이 발표한 F-X 사업 평가 기준은 비용 30%, 성능 33.61%, 운용 적합성 17.98%, 경제적·기술적 편익 18.41%다. 방사청은 이 4가지 요소를 종합적으로 평가해 기종을 선정하겠다고 업체들에 밝혔지만 실제로는 가격만을 결정적인 요소로 취급하는 모습을 보인다며 일부 업체가 반발하고 있다.

◇"정부의 전략 부재가 문제"

현재 군의 선택은 두 가지다. F-15SE를 최종 기종으로 선정하든지, 아니면 전면 재검토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군 안팎에선 어떤 결정을 내려도 큰 논란과 후유증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는 지적이 높아지고 있다. 또 어디서부터 문제가 꼬였는지를 둘러싼 책임론도 벌써 제기되기 시작했다.

원점 재검토로 가면 1~2년 이상 사업 지연에 따른 전력 공백이 불가피하고 보잉(F-15SE)의 반발이 불을 보듯 뻔하다. 'F-35 밀어주기 차원의 결정'이라는 음모론 제기를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반대로 F-15SE로 결정할 경우 성능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F-15SE는 스텔스 도료와 내부 무기 탑재실(CWB) 등으로 부분적인 스텔스 성능을 갖췄다고 하지만 본격적인 스텔스 성능은 F-35보다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된다. 공군 고위 관계자는 "정부 차원의 전략 부재가 이런 상황을 초래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