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회에서 역사를 부정하는 목소리들이 자꾸 늘어나고 있어 걱정입니다. 이 책이 진실을 알리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일본인 사학자 다케우치 야스토(竹內康人·56)씨가 최근 '조사(調査)·조선인 강제노동 탄광 편'(사회평론사)이라는 책을 펴내고 일제에 강제 징용된 한인들의 수난사를 생생하게 소개했다. 그는 20일 전화 인터뷰를 통해 "약 70만명의 한국인이 강제 연행됐으며 이 중 33만명이 근로 조건이 가장 열악했던 탄광에 배치됐다"고 밝혔다. 1990년대부터 일본 전역의 강제 징용 현장을 답사해온 그는 2005년 일본 시민단체 '강제동원 진상규명 네트워크' 결성에 참가했으며, 관련 논문과 자료집을 다수 출판했다.

이번 책에는 일본 정부와 기업 자료, 현지답사, 관련 증언 등을 토대로 탄광별 징용자 숫자, 사망자 명단 등을 꼼꼼하게 파악해 수록했다. 그는 "후쿠오카(福岡)현에서만 50개 이상의 탄광에서 한국인이 강제 노동에 시달렸다"면서 "미쓰이(三井), 미쓰비시(三菱) 계열의 탄광에서도 각각 6만명의 한국인이 일했다"고 밝혔다. 그는 징용자가 강제 동원된 것은 아니라는 극우파 주장에 대해 "전쟁 확대에 따른 노동력 부족을 메우기 위해 국가가 식민지 민중을 조직적으로 강제 동원했다는 증거는 수도 없이 많다"고 말했다.

다케우치씨는 '나치에게 개헌 수법을 배우자'고 망언을 한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의 증조부인 아소 다키치(麻生太吉)가 창업한 아소 탄광과 계열사에도 1939~45년에만 한국인 징용자 1만623명이 일했다고 밝혔다. 후쿠오카 등에 있던 아소 탄광은 다른 탄광보다 임금이 싼 데다 노동 환경이 열악해 '착취 지옥'으로 불릴 정도였다고 한다. "휴일도 없이 소나 말처럼 일해야 했다." "죽어도 채탄 중 사고사로 처리됐다." "조선인들이 모이면 이유없이 구타했다." "'조선인 지옥'이라고 불렸다." 당시 생존자들의 증언이다.

아소탄광 들어가기 전 체조… 아소 다로(麻生太郞)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의 증조부 아소 다키치(麻生太吉)가 운영한 ‘아소 탄광’에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광부들이 탄광에 들어가기 전 체조를 하고 있다(왼쪽). 지난 15일 출간된 일본인 사학자 다케우치 야스토(竹內康人)의 ‘조사·조선인 강제노동 탄광편’은 아소탄광에서 일했던 한인들이 강제노동과 착취, 고문 등에 시달렸다고 서술했다. 이들은 하루 17시간 일하면서도 임금은 다른 국적 광부에 비해 절반밖에 받지 못했다. 오른쪽 사진은 아소 탄광 전경.

탄광 노역을 견디지 못하고 탈주하는 한국인이 늘면서 탄광 주변에는 감옥을 연상시키는 감시망이 구축됐다. 아소 탄광이 패전 직전에는 한국인뿐만 아니라 호주 등 연합군 전쟁포로 300명을 강제 노역시켰다는 일본 정부의 문서가 2008년 공개되기도 했다. 당시 아소 탄광은 아소 부총리의 부친이 직접 경영했다. 아소 부총리는 "당시는 너무 어려서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해명한 바 있다.

다케우치씨는 "탄광들은 징용자들의 임금을 저축이라는 명분으로 주지 않는 등 사실상 노예 노동을 강요했다"고 했다. 다케우치씨는 1965년 한일협정으로 배상 문제가 완료됐다는 일본 정부와 기업의 주장에 대해 "피해자들이 납득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해결이 될 수 있느냐"면서 "기업들이 기금을 내서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배상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