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5대 록 페스티벌'이 19일로 모두 끝났다. 안산밸리, 펜타포트, 지산월드, 슈퍼소닉, 시티브레이크까지 5개 축제가 각각 2, 3일씩 이어졌다. 무대는 총 18개였으며 어림잡아 350팀 가까운 밴드가 그 위에 섰다. 조선일보가 지난 6월 대중음악 전문가들을 상대로 사전 기대점수를 측정했을 때는 안산―슈퍼―펜타―시티―지산 순으로 집계됐으나, 실제 뚜껑을 열어보니 기대치와는 사뭇 달랐다. 안산·펜타·시티가 3강 구도를 갖췄고, 지산과 슈퍼는 허술한 진행이나 볼품없는 무대가 거슬렸다. 5대 록 페스티벌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5개 장면을 꼽았다.

1위: 이것이 펑크다―이기 앤 더 스투지스(시티브레이크)

이기 팝을 봤으면 올여름 록 페스티벌을 본 것이고, 아니면 보지 않은 것과 진배없다. 올해 66세인 이기 팝이 웃통을 벗고 허리띠와 단추까지 푼 채 관객 하나를 지목해 웃음지으며 말했다. "너는 정말 예쁘구나, 정말 예쁘구나." 곧이어 눈을 치켜뜨며 벼락같이 소리쳤다. "네 예쁜 얼굴은 지옥에 갈 거야!" 펑크록의 대부가 다음 곡 'Your Pretty Face Is Going To Hell'을 소개하는 방식이었다. 지난 17일 첫 내한무대에 오른 이 로커는 70분 공연으로 펑크(punk)가 무엇인지 말했다. 1970년대 전성기를 구가했던 그의 노래를 따라하는 관객은 거의 없었으나, 60대 로커가 내뿜는 열기에 관객 누구도 자리를 뜨지 못했다. 그의 엉덩이에 걸쳐진 청바지는 끝내 벗겨지지 않았(그래서 다행이었)다. 56~64세인 스투지스 멤버들의 불꽃 같은 연주도 얼얼했다.

이기 앤 더 스투지스의 지난 17일 무대는 ‘록의 정신(rock spirit)’이 무엇인지 보여준 현장이었다. 66세 로커의 무대와 환호하는 관객을 보며 ‘록 페스티벌이 아니면 이런 공연을 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위: 내일 지구 종말이 오더라도―메탈리카(시티브레이크)

메탈리카는 '보러' 가지 않고 '영접하러' 간다. 순도 99%의 열광으로 가득찬 메탈리카의 18일 무대의 관객들 표정은 '곧 메탈리카를 보게 된다'에서 '드디어 나왔다'로 바뀐 뒤 2시간 동안 변하지 않았다. 1998년 첫 내한공연 때부터 줄곧 계속되는 'Master of Puppets' 기타 솔로 입으로 따라하기('우오오오 오오오'로 들린다)는 올해도 이어졌다. 'The Memory Remains'의 기타 솔로를 관객들이 약 1분간 무반주로 합창할 때는, 종교 공동체의 심야 찬양 집회 같았다. 이날 잠실 주경기장 잔디는 3만L의 땀(3만명×1L)으로 흠뻑 젖었고, 공연 후 지하철 종합운동장역에서는 군대 유격훈련 직후 군복의 냄새가 났다. 메탈리카가 갑(甲)이다.

3위: 조명도 인더스트리얼―나인인치네일스(안산밸리)

2007년 트렌트 레즈너가 첫 내한무대에 섰을 때, 사진보다 훨씬 거대한 몸집에 놀랐으나 이내 기계음과 리얼 악기를 정밀하게 교직(交織)한 인더스트리얼 록 라이브에 빠져들었었다. 지난달 28일 안산에서 그가 이끈 나인인치네일스(NIN)는 어마어마한 물량의 장비를 동원해 현미경 단위로 연출한 듯한 무대를 보여줬다. 0.01초 오차도 허락하지 않는 조명과 사운드의 환상적인 조합은 마치 기계장치로 실행된 것 같았다.

록 페스티벌의 가장 뜨거운 순간은 모든 관객이 점프하며 열광할 때이지만, 단독 공연에서는 볼 수 없는 규모의 무대에서 독특한 밴드의 라이브를 볼 때 ‘록페’의 진가가 발휘된다. 메탈리카(사진 위), 나인인치네일스, !!!(칙칙칙), 위저(사진 아래 왼쪽부터).

4위: 왜 프런트맨이 밴드의 90%인가―!!!(펜타포트)

!!!(보통 '칙칙칙'이라고 읽는다)은 2011년에 이어 펜타포트에서만 한국 관객과 만났다. 상대적으로 평범했던 펜타포트 라인업을 이 밴드 하나가 상큼하게 만들었다. 지난 4일 무대에 선 !!!은 보컬 닉 오퍼가 거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는 밴드였다. 반바지인지 사각팬티인지 모를 하의(재작년에 입은 것과 비슷하다)를 입고 골반춤을 추는 이 친구는 보고만 있어도 즐겁다.

5위: 40대 록스타의 귀염받는 법―위저(지산월드)

지난 2일 지산에서 위저의 마지막 곡은 김광석의 '먼지가 되어'였다. 위저 보컬 리버스 쿠오모는 "죽을 때까지 놀자", "소리 질러"라고 한국말로 했다. 그러더니 끝내 한국 노래까지 불렀다. 올해 43세인 그는 모범생 뿔테 안경에 마름모 무늬 조끼를 입고 나왔다. "나는 한국이 정말 좋아요. 왜냐하면 한국은 내게 태양 아래 섬(Island In The Sun)이거든요" 하고 다음 곡 소개를 할 때 객석에서 20대 여성들이 "귀여워~" 하는 소리가 자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