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식의 브레인 스토리] [46] 초보자만 있고 '달인'은 없는 나라

조선일보
  •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입력 2013.08.20 03:02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얼마 전 미국 반도체 설계 전문회사 '퀄컴' 부사장의 인터뷰가 생각난다. 한국 기업들이 판매 중인 새로운 스마트폰용 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대한 그의 대답은 도도했다. 그는 "(우리는 그런) 바보 같은 건 만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최고 기업의 최고 엔지니어들이 설계한 게 바보 같다니? 하지만 알 만한 전문가들은 다 안다. 대한민국 최고의 제품이라고 해도 국제적으로 멋지고 스마트하다기보다 그냥 열심히 잘 만들었다는 인상을 준다는 것을…. 아직 우리는 '노력상' 정도는 받아도 '최고상'은 받지 못한다.

현 정부의 핵심 코드는 '창조경제'다. 그동안 대한민국을 먹여 살렸던 '모방경제'의 프레임을 창조적 경제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당연한 이야기다. 하지만 모방경제에서 창조경제로 바꾼다는 것은 농구를 하다가 축구를 시작하는 것과 비슷하다. 단순히 유니폼만 갈아입고 운동장에 잔디를 새로 깐다고 다가 아니다. 왕년엔 당연했던 것들이 무의미해지고, 과거의 정답이 이제는 새로운 문젯거리가 될 수 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다 바꿔야 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모방경제가 모방형 인재를 필요로 했다면, 창조경제는 창조형 인재를 필요로 한다. 결국 제일 중요한 건 '나' 자신이 달라져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정부에서 창조경제를 추구한다고 우리가 다 같이 하루아침에 다빈치 같은 천재가 될 수도 없고 될 필요도 없다. 정부가 원한다고 천재가 나올 리 없고, 정부가 아무리 막으려 해도 어차피 나올 천재는 결국 나온다.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렇다면 전 국민에게 '인문학' 교육을 하면 어떨까? 답은 "글쎄요"다. 회로 설계 엔지니어가 노자나 장자를 읽는다고 그다지 더 창조적인 설계가 나올 것 같지는 않다. 스마트폰 디자인이 플라톤의 '폴리테이아'를 읽는다고 달라질까? 노자·장자· 플라톤은 이미 그들 자체에 충분한 의미가 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바라지 않는 게 현실적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하는 것들을 그 누구보다 더 잘하기만 해도 될 수 있다. 처음 운전하기 시작했을 때의 어려움을 기억해보자. 수많은 실수, 어려움, 그리고 끝없는 불안…. 초보자와 달인의 뇌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경험이 없으면 모든 게 새롭기에 모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달인은 같은 일을 그 누구보다도 쉽고, 빠르고 완벽하게 한다. 그리고 이미 잘하기에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달인 뇌의 비밀은 무엇일까? 대부분 달인은 타고난 천재가 아니다. 단순히 수많은 시도와 연습을 통해 뇌가 많은 경험을 쌓았을 뿐이다.

엔지니어들이 보고서 쓸 시간에 새로운 회로를 디자인하고, 교수들이 정부청사 복도에서 사무관을 기다릴 시간에 연구하고, 정치인들이 욕하고 싸울 시간에 나라의 미래를 설계한다면? 우리나라엔 회로 설계의 달인, 연구의 달인, 정책의 달인들로 넘칠 것이다. 그리고 그때 다시 한 번 퀄컴사 부사장에게 질문하고 싶다. 이번에 새로 나온 대한민국 제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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