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간 매주 애국지사묘역 잠든 아버지 찾는 아들

조선일보
  • 전현석 기자
    입력 2013.08.15 03:05

    [오늘 광복절… 독립투사 아버지와 아들 이야기] ① 故 이재현 선생 아들 이형진씨

    하루 벌이 빈곤한 살림에 아버지께 "청와대라도 찾아가 일자리 부탁해보라" 하자
    "투사는 지분을 요구 않는다" 불호령 후 석달동안 아들 안봐

    14일 오전 10시쯤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묘역. 이형진(59)씨는 아버지인 고(故) 이재현 선생의 묘 제단 위에 보온도시락을 꺼냈다. 잡곡밥에 고추조림, 우엉, 멍게젓, 김치 반찬이 나왔다. 이씨는 "아버지께서 평소 즐겨 잡수시던 반찬"이라 했다. 이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애국지사들에게 선물로 줬다는 은 술잔에 소주를 따라 올렸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큰절 대신 거수경례를 했다. "아버지께서는 광복군 출신의 군인이셨으니 거수경례를 올려야 마땅하다"고 했다.

    이씨는 곧이어 묘역 뒤쪽에 있는 무후선열충렬대(無後先烈忠烈臺)로 갔다. 후손이 없거나 납북돼 숨진 애국지사들 위패가 모셔진 곳이다. 이씨는 큰아버지 고 이재천 선생의 위패에 소주 한 잔 올린 뒤 묵념했다.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오전 10시쯤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서 이형진(59)씨가 아버지 고(故) 이재현 선생의 묘비를 만지고 있다. 이씨는 아버지가 별세한 1997년부터 16년 동안 매주 이곳을 찾고 있다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오전 10시쯤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서 이형진(59)씨가 아버지 고(故) 이재현 선생의 묘비를 만지고 있다. 이씨는 아버지가 별세한 1997년부터 16년 동안 매주 이곳을 찾고 있다. /이진한 기자
    경기도 안양에 살고 있는 이형진씨는 16년 동안 매주 한 번씩 아버지와 큰아버지 묘소를 찾아 참배하고 있다. 1997년 2월 24일 아버지 이재현 선생이 별세한 직후부터다. 이씨는 "처음에는 3년만 하려 했는데 하다 보니 이렇게 됐다"고 했다.

    이씨의 증조할아버지는 1919년 할아버지 이용환 선생과 당시 6세 이재천 선생, 2세 이재현 선생을 중국에 있는 김구 선생에게 보냈다. 이후 할아버지와 큰아버지, 아버지는 모두 항일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이재천·이재현 선생은 김구 선생으로부터 각각 우봉(牛峰)·해평(海平)이라는 호를 받았다. 이재천 선생은 김구 선생 지시로 상하이에 한국소년동맹을 조직해 무력 항일 투쟁을 벌였다. 난징(南京)에 있는 중국중앙군경학교에서 군사훈련을 받은 뒤 1935년 10월 인천으로 입국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던 중 실종됐다.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다.

    이재현 선생은 1939년 충칭(重慶)에서 조직된 공작 부대인 한국청년전지공작대(韓國靑年戰地工作隊)의 공작조장으로 임명돼 정보 수집, 공작 임무를 수행했다. 1940년 광복군이 창설되자 공작대는 광복군 제5지대로 편입됐으며, 이재현 선생은 간부로 활동했다. 그는 1945년 국내정진군(國內挺進軍) 본부 요원으로 국내 침투 공작을 준비하던 중 광복을 맞았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6·25전쟁 당시 이 선생은 주한 미군사고문단 서해지구 정보대장으로 활동하며 평안북도 철산군 대화도를 거점으로 대북 유격전 및 첩보전을 수행했다. 전쟁이 끝나고 이 선생은 제대했다.

    이씨는 "아버지는 독립투사였고 6·25전쟁 영웅이었지만 좋은 가장은 아니었다"고 했다. 이 선생은 제대 후 직업을 가진 적이 없었다. 이 선생 대신 이씨의 어머니 김숙(87)씨가 하루 벌이를 하며 2남3녀를 먹여 살렸다. 이씨가 청년이 된 후 아버지에게 "청와대라도 찾아가 일자리를 부탁해보라"고 하자 이 선생은 불호령을 내렸다. "젊은 놈이 정신이 썩었다. 그래서 뭘 하겠느냐. 투사는 지분(持分)을 요구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이후 석 달 동안 아들을 보지 않았다고 한다.

    이 선생이 몰두한 것은 국제어인 에스페란토어 연구였다. 국어-에스페란토어 사전을 편찬하고 세계에스페란토협회의 27번째 명예위원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이씨는 "돌아가신 이후 아버지를 조금씩 이해하게 됐다"며 "벌초까지 하면 참배에 두 시간이 걸리지만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 했다.

    국립서울현충원 직원 중 이씨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위패에 흠집이 생기는 등 애국지사묘역에 작은 문제라도 생기면 바로 직원에게 달려가 항의했다. 선글라스를 쓰거나 반바지·슬리퍼 차림으로 현충원에 온 사람들은 이씨의 신고 대상이다. 이씨는 "서울현충원이 국민에게 친숙하게 다가가는 건 좋지만, 이곳은 민족의 성지인 만큼 예를 갖추는 게 마땅하다"며 "광주 5·18묘역에선 엄두도 못 내는 일들을 현충원에선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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