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만금 줘도 상처 안 아물어… 日 사과 받고싶다"

조선일보
  • 김은정 기자
    입력 2013.08.14 03:26

    [위안부 할머니들, 한국 법원에 '日 손해배상 민사조정' 신청]

    "심부름 다녀오다 납치돼 중국의 위안소로 끌려가
    도망가다 日軍에 붙잡히자 못걷게 만든다며 도끼로 찍어

    58년 만에 고향에 돌아오니 오래전 사망신고 돼 있더라"

    할머니들 눈물의 증언에 日 기자들 서툰 한국말로 "건강하시고 힘내십시오"

    "일본이 억만금을 준대도 상처는 아물지 않아요. 우리가 다 죽으면 이 문제가 해결된다고? 천만에요, 역사가 기억하고 있습니다."

    경기도 광주에 있는 위안부 할머니 쉼터 '나눔의 집'에 거주하는 이옥선(85)·강일출(85) 할머니가 13일 오전 서울중앙지방법원을 찾았다. 이틀 전 시설에서 함께 생활했던 이용녀 할머니를 떠나보낸 충격에 몸과 마음이 급격히 쇠약해진 상태였다. "어젯밤 너무 떨려서 한숨도 못 잤다"는 두 할머니는 연신 심호흡을 하며 접수창구로 걸음을 옮겼다. 이날 두 할머니는 다른 위안부 할머니 10명과 함께 일본 정부를 상대로 각 1억원씩 손해배상금을 요구하는 민사 조정(調停)을 신청했다. 서류를 내밀며 손자뻘인 법원 직원에게 거듭 머리 숙여 "잘 좀 부탁드린다"고 했다. 일본 언론 20여곳은 이들의 기자회견을 3시간 넘게 밀착 취재할 정도로 높은 관심을 보였다.

    이옥선 할머니가 일본군에게 끌려가던 그날의 기억을 힘겹게 꺼냈다. 할머니는 부산 중구 보수동에서 태어났다. 1942년 7월 29일 낮, 당시 14세이던 할머니는 어머니 심부름을 다녀오다 큰길에서 일본군에게 납치됐다고 했다. 양손과 발이 묶인 채 물 한 방울 못 얻어먹고 중국 옌볜의 위안소로 끌려갔다. "너무 울어서 눈이 퉁퉁 부었었는데 그래도 어린 마음에 중국 땅이 신기하고 호기심도 생기더라. 하지만 금세 아니란 걸 알았지."

    13일 오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이옥선(85·왼쪽)·강일출(85·오른쪽)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자 12명을 대표해‘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민사조정 신청서’를  제출하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13일 오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이옥선(85·왼쪽)·강일출(85·오른쪽)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자 12명을 대표해‘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민사조정 신청서’를 제출하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이명원 기자
    할머니는 위안소를 '사람 잡는 도살장'이라고 했다. 말귀를 못 알아들으면 매질을 당했다. 오른쪽 팔뚝의 길이 5cm의 칼자국도 그때 생겼다. 양말을 벗으니 발가락 위에도 벌건 상처가 드러났다. "도망가다 붙잡히자 '다시는 못 걷게 만들겠다'며 도끼로 발을 찍더라. 발이 안 떨어진 게 신기하다." 할머니는 지금도 부축 없이는 못 걷는다. 자궁을 적출당했고 청력과 시력, 치아는 물론 심장과 신장 기능도 온전치 못하다. 할머니는 "나보다 어린 열한 살짜리 아이들은 더 심한 꼴을 당했다. 어린 애들이 뭘 알았겠느냐"고 했다.

    강일출 할머니의 눈물샘은 이날도 마르지 않았다. 경북 상주의 '곶감집 막내딸'이었다는 할머니도 열네 살 때 중국 지린의 위안소로 끌려갔다고 했다. 할머니는 "이제 살면 얼마를 살겠나. 진심 어린 사과를 받고 싶다"고 했다.

    할머니들의 '절규'에 일본 기자들도 숙연해졌다. 한 특파원은 "우리도 역사를 배워 잘 알고 있다"는 말로 할머니들을 위로했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차량에 오르는 할머니를 부축하며 서툰 한국말로 "건강하시고 힘내십시오"라고 응원하는 특파원도 있었다. 소송 대리인 김강원(50) 변호사는 "최근 일본에 강력한 우경화 바람이 불고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양심적인 세력도 늘고 있다"며 "그분들의 건강한 상식이 승리할 거라 믿고 싶다"고 했다.

    법원은 일단 할머니들의 조정 신청을 받아들일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법은 대법원과 주한 일본 대사관을 통해 일본 정부에 우편으로 서류를 송달해 일본 측 의사를 묻게 된다. 우리나라처럼 일본의 법무대신이 국가를 대신해 소송을 할지, 내각을 총괄하는 관방장관이 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만약 일본 정부가 대응하지 않는다면 조정은 결렬되고 자동으로 민사소송으로 넘어간다. 소송은 조정보다 절차가 더 까다롭다. 재판부는 재판권이 우리에게 있는지부터 따질 계획이지만 만일 일본이 위안부 정책을 '주권 행위'라고 주장하면 심리가 불가능해질 수 있다. 2008년 이탈리아 대법원은 2차 대전 중 독일에 강제징용된 자국민 페리니(Ferrini)가 독일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었다. 그러나 독일은 곧바로 이의를 제기했고 UN 국제사법재판소는 "독일의 자주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옥선 할머니는 "이번 소송이 될 듯 말 듯하다는 거 안다. 하지만 한국에도 법이 있으니까. 늙은이 소원이다"고 했다. 현재 생존해 있는 위안부 할머니는 57명(해외거주 6명)이다. 14일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가 정한 '세계 위안부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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