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12일 본지 인터뷰에서 정부가 최근 발표한 세제 개편안에 대해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전체 세원(稅源)을 유기적으로 검토해 효율적이고 광범위하게 세금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갔어야 했다"며 "소득세를 건드릴 문제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정무적 판단이 부재한 가운데 여론 수렴도 없이 느닷없이 이뤄졌다"고도 지적했다. 김 전 수석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총괄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박 대통령이 서민·중산층에 부담을 준 부분에 대해 원점 재검토를 지시했다.
"반발이 심하니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이제 대통령은 물러서 있고 여당이 정치적으로 수습하는 수순으로 갈 수밖에…. 애당초 소득세는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왜 그런가.
"실효성이 없다. 이번 세제 개편의 명분 중 하나는 복지재원 조달이다. 소득세 비과세 감면 축소로는 앞으로 늘어날 복지 수요를 어차피 충족시키기 어렵다. 괜히 건드려 시끄럽게만 됐다. 게다가 소득세는 조세 저항이 심하다. 조원동 경제수석이 '거위의 깃털을 고통 없이 뽑는 방식'이라고 했는데 소득세는 납세자가 고통을 느끼는 세금이다."
―정부는 증세(增稅)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세금 부담이 늘어나면 당연히 증세다."
―의견 수렴 과정의 문제점도 지적된다.
"세금의 역사는 정치 혁명의 역사다. 영국의 청교도혁명, 프랑스 시민혁명, 미국의 독립전쟁도 다 세금과 관계가 있다. 세제 개편은 재정학 이론만 갖고 되는 게 아니다. 정치·사회와 심리적인 것까지 고려해서 추진해야 하는데 그런 것이 없었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부족했나.
"정무적인 판단이 안 보였다. 세제 개편은 당이 주축이 되어야 한다. 대통령이 관료들에게 '복지 재원 부족하니 개편안 만들어오라'고 하니깐 '세금의 정치성'에 둔감한 관료들이 그런 안을 갖고 간 것이다. 아울러 청와대에선 경제수석뿐 아니라 정무수석도 대통령과 마주 앉아 논의했어야 했다. 새누리당은 피동적이었고 청와대에선 정무적 판단을 제공하는 사람이 없었다."
―'서민과 중상층에 대한 세금 폭탄' 지적에는 동의하나.
"야당의 정치 공세다. 하지만 납세자들은 피부에 와 닿을 것이다. 세금은 논리적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 서민들은 조금이라도 세(稅) 부담이 늘어나면 반응을 보인다. 1년에 16만원도 아까운 건 아까운 거다. 1981년 11대 국회에서 교육세를 재산세에 붙여서 도입하려고 했는데 안 했다. 증가분이 전국적으로 600억원 정도에 불과했지만 재산세를 내는 사람이 '가정주부'라는 이유에서였다."
―민주당은 소득세 최고세율 구간을 대폭 낮추자고 한다.
"그것 역시 항구적인 복지 재원 조달 방안이 될 수 없다. 어떤 방식으로 조정되든 반발은 있을 수밖에 없다."
―법인세 인상은 어떤가.
"우리나라 법인세는 실효세율로 보면 대만 수준이다. 야당에서 그런 주장을 하는데 글로벌 경제 시대에 세계적 흐름과 상충된다. 외국 기업 투자 유치라는 측면에서도 법인세를 올리면 부작용이 더 클 것이다."
―증세 기준선을 올릴 경우 여야가 합의할까.
"지금으로서는 세제 개편안을 좀 손질한다고 하더라도 야당이 받기 어려운 정치적 상황이 돼 버렸다. 이런 걸 갖고 야당과 포괄적으로 영수회담을 하는 것은 어떤가."
―소득세나 법인세 인상도 아니라면 다른 방법은.
"물가 인상의 부담은 있지만 현실적 대안은 부가가치세 인상이다. 간접세가 복지 재원을 조달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물론 대통령이 정치적인 부담을 지고 국민을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