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식의 브레인 스토리] [45] 우리들 머리 바깥의 벽, 그리고 머리 안의 벽

조선일보
  •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입력 2013.08.13 03:03

김대식 KAIST 교수 사진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이유 없이 인간을 잡아먹는 거인들을 피하기 위해 살아남은 사람들은 높은 벽을 짓고 100년 동안 숨어 산다. 바다에서 나타난 외계 괴물들을 막기 위해 인간은 전 세계 해변을 거대한 벽으로 둘러쌓기 시작한다. 신종 전염병에 걸려 식인 좀비로 변한 인간들을 건강한 사람들은 높은 벽으로 막으려 한다.

요즘 주목받고 있는 일본 만화 '진격의 거인' 그리고 할리우드 영화 '퍼시픽 림'과 '월드 워 Z'의 스토리들이다. 내용과 배경은 다르지만 하나의 교집합이 있다. 바로 인간이 두려워하는 그 무언가를 막기 위해 높은 벽을 쌓는다는 내용이다. 문제 그 자체를 해결할 능력이나 의지가 없기에 벽을 쌓고 문제를 외면한다는 것이다. 우리 뇌는 보이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고 스스로 최면을 걸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벽'들이 외면하고 싶은 외부의 무언가를 막기 위해 만들어지는 반면, 나 자신이 더 이상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음을 보여주려는 벽도 있다. 로마제국 14번째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지은 '하드리아누스의 방벽'이 그렇다. 기원후 117년 그가 황제로 취임할 당시 로마제국은 그야말로 알려진 전 세상을 지배하고 있었다. 스코틀랜드에서 예루살렘까지, 그리고 북아프리카에서 오스트리아까지 오늘날 유럽·중동·북아프리카 대부분 국가가 로마라는 한 나라의 통치 아래 살고 있었다. 하지만 로마는 정말 영원히 팽창할 수 있을까? 하드리아누스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선대 황제 트라야누스가 정복한 다키아(오늘의 루마니아)를 포기하고 다누베 강변과 북(北)영국에 거대한 성벽을 쌓기 시작한다. 로마는 이미 모든 걸 가지고 있기에 더 이상 나가봐야 얻을 게 없다는 생각이었다.

김대식의 브레인 스토리 일러스트

'벽'은 인류에게 항상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피하고 싶은 외부의 무언가를 외면하거나 더 이상 나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벽을 쌓는다. 벽은 우리 머리 안에도 존재한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 있으면 마음의 벽을 쌓아 외면하고, 이미 나는 모든 걸 다 가졌다는 오만에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전 세계 모든 역사학자가 검증한 '성 노예'의 존재를 외면하고, 생체 실험 부대 이름인 '731'이 적힌 비행기를 타고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세운 아베 총리, 그리고 나치 독일의 헌법 쿠데타 방법을 배우자는 아소 부총리…. 만약 메르켈 독일 총리가 유대인 수용소의 존재를 부인하고 'Mengele (Dr. Josef Mengele·유대인 수용소에서 생체 실험을 수행한 나치 의사)'라고 적혀 있는 비행기에 올라타 엄지손가락을 세운다면 어떨까? 당연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어쩌면 지금 일본 정치인들 뇌엔 외면과 오만이라는 두 가지 벽이 동시에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벽에는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아무리 거대하고 단단한 벽도 결국 언젠가는 무너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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