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이 만난 사람] "난 사회적 기업 100개 운영… 봉급·배당금 없이 다만 차 한잔 얻어 마실 뿐"

조선일보
  • 최보식 선임기자
    입력 2013.08.12 03:01 | 수정 2013.08.29 23:08

    '착한 자본주의' 꿈꾸는 빈민의 聖者… 무함마드 유누스 前 그라민은행 설립자
    남의 慈善에 의존한다면 이는 내 삶이 아니다… 근본적 해결은 사회적 기업
    빈곤이 마치 사라진 공룡처럼 존재하지 않아 모를 때쯤… '빈곤 박물관' 세우는 꿈을 꿔

    우리에게는 '빈자(貧者)를 위한 은행'으로 알려진, '그라민 은행'의 설립자인 무함마드 유누스(73)가 딱 하루 일정으로 방한했다. 그는 오전과 오후 두 번의 강연을 했고, 그 중간에 인터뷰를 소화했다.

    "위대한 정치 지도자가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해준다면 최고다. 불행하게도 대부분 나라에서는 그런 지도자를 갖고 있지 않다. 우리는 평범한 지도자와 함께 가야 한다. 우리는 해결책이 없는가. 지도자의 리더십이 평범하다면 시민들이 특별해야 한다."

    한정된 시간에서 그는 한마디라도 더 남기겠다는 듯 열정적으로 답변했다. 사실 그에게 '사회적 기업에 대해 배우고 싶다'며 초청한 이는 최태원 SK 회장이었다. 올 초 약속했다고 한다. 그 뒤 최 회장이 수감됐으나 그는 약속된 것이라며 왔다.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우리는'자선(慈善)'에만 의존한다. 그러나 자선이 베풀어진 뒤에도 사회적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다. 이는 문제를 감출 뿐이다. 만약 내가 남의 자선에 의존해 살아야 한다면 이는 내 삶이 아니다. 진정한 해결은 자선에서 벗어나서 자립시키는 것이다."

    그는 경제학 교수 재직 시절 자신의 고향 마을에 들렀다가 고리대금업자들에게 착취당하는 주민들의 참상을 목격했다.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주기 위해 주민 42명에게 자신의 돈으로 27달러씩 빌려줬다.

    이렇게 신용과 담보 없는 빈민층을 위해 문을 연 '그라민 은행'의 현재 대출자는 840만여 명으로 늘어났다. 대부분은 극빈층의 여성들이라고 한다. 그는 빈민 구제의 공로로 2006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고, '빈민의 성자(聖者)'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재작년 그는 '그라민 은행' 총재직에서 해임됐다. 60세 정년 임기를 넘었다는 게 방글라데시 정부의 공식 입장이었다. 당시 "정치적인 이유로 해임됐다"는 말들이 돌았다. 질문은 여기서부터 시작했다.

    ―지금은 그라민 은행과 어떤 관계인가?

    "이미 CEO가 아니고, 공식적으로는 직책이 없다."

    ―은행은 어떻게 되고 있나?

    "내가 물러난 것 빼고는 은행에서 바뀐 게 없다. 나와 함께 일한 사람들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가끔 내가 조언을 해줄 때는 있다."

    ―그라민 은행은 소수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얼마간 도움은 되겠지만 가난을 근본적으로는 해결할 수는 없지 않을까?

    "돈을 대출받은 사람들이 많은 경제활동을 일으켰다. 재봉틀을 사고, 소나 닭도 샀다. 야채를 길러 시장에 내다 팔았다. 유엔의 '밀레니엄 개발 목표'중 첫째가 2015년까지 세계 빈곤층을 절반으로 줄이는 것이었다. 방글라데시는 올 초 목표 달성을 발표할 수 있었다."
    무함마드 유누스 박사는 "전통적인 기업은 더 많은 이익을 낼수록 더 성공이지만 사회적 기업은 사회적 문제를 잘 해결할수록 성공"이라고 말했다. /성형주 기자
    ―그런 성취에도 불구하고 우리 같은 제3자의 눈에는 방글라데시는 여전히 절대 빈국(貧國)으로 분류된다.

    "과거 우리의 절대빈곤층은 85%였다. 이제 30%로 떨어졌다. 세계적으로 멕시코 같은 나라들은 우리보다 절대빈곤층의 비율이 더 높다. 그라민 은행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본다."

    ―방글라데시의 경우에는 좀 더 근본적인 어떤 변화, 개혁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이다. 어느 나라에도 개혁은 필요하다. 나는 큰 개혁을 준비하고 있다."

    ―2007년 선생은 정당을 만들어서 정치에 참여하려고 했다. 그때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나?

    "그렇다. 우리 정치 시스템은 꽉 막혀 있었다. 그래서 내가 정치 무대로 떠밀렸다. 새 정당을 만들겠다고 선언했지만, 두 달 반 만에 나는 포기했다. 정치는 내 영역이 아니었다."

    ―구체적으로 왜 포기했나?

    "올바른 선택이 아니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정치는 정치인들이나 해야지, 나는 정치인이 아니었다."

    ―근본적인 개혁에 대한 미련은 접었나?

    "천만에, 나는 여전히 근본적인 개혁에 관여하고 있다. 그라민 은행은 금융 분야에서, '사회적 기업'은 비즈니스 분야에서 근본적인 개혁이다. 여성들을 집안일에서 끌어내 경제활동에 참여시킨 것이야말로 진정한 개혁이다. 방글라데시에서 지난 25년간 가장 위대한 성취 중 하나는 여성의 역할 변화일 것이다."

    ―여성들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기에?

    "젊은 여성들은 촌락에서 나와 도시와 해외로 나가기 시작했다. 방글라데시가 세계 제2위의 의류 수출국이 된 것은 여성 노동자들의 덕분이었다. 이들은 또 한국 등 해외에 나가 일하고 있다. 이들이 송금하는 연간 4000만달러는 외환보유고의 중요한 재원이 되고 있다…."

    그는 방글라데시의 현재 진행형 변화를 말하고 있었지만, 우리가 지나온 과거 시절이었을 뿐이다.

    ―뛰어난 정치 지도자가 이끌어갈 경우 국민의 삶은 훨씬 더 많이 진전되지 않을까?

    "불행하게도 대부분 나라에서는 그런 지도자를 갖고 있지 못하다. 시민들은 스스로 나서서 해답을 찾을 수밖에 없다. 내가 '사회적 기업'을 강조하는 것은 이를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여러 나라를 돌며 사회적 기업이 무엇인지를 알리고, 사람들에게 사회적 기업을 하도록 돕는다."

    그라민 은행에서 해임된 뒤 그는 사회적 기업들을 거느린 '유누스 센터' 회장을 맡고 있다.

    ―자회사가 여러 개 된다고 들었다.

    "아마 100개쯤 될 것이다. 방글라데시뿐만 아니라 세계 도처에 있다. 하지만 내 소유가 아니다. 나는 어느 회사도 소유하지 않는다. 개인 지분도 전혀 없다. 이 회사들에서 이사직은 맡고 있지만 내게는 전혀 배당금이나 봉급, 용돈을 주지 않는다. 단지 차 한잔을 줄 뿐이다(웃음)."

    ―선생이 말하는 '사회적 기업'은 어떤 것인가?

    "인간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업이다. 이익 배당금이 없다. 전통적인 기업은 돈을 많이 버는 게 최고의 목표다. 더 많은 이익을 낼수록 더 성공했다는 소릴 듣는다. 사회적 기업에서는 사회적 문제를 많이 풀수록 더 성공한 것이 된다."

    ―기업에 투자하는 것은 이익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돌아오는 이익이 없는데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에 투자하려고 할까?

    "나는 사람들이 돈만을 추구한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들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때 행복감을 느낄 것이다. 그런 기회를 갖지 못해 왔기 때문에 그런 투자를 못 한 것이다.'이익 추구'와 '사회적 문제 해결'중 어느 역할을 선택할지 사람들에게 묻는다면, 아마 후자를 더 많이 선택할 것으로 나는 본다."

    ―과연 그럴까? 자본주의는 개인의 탐욕과 이기심에 의해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만든 자본주의 시스템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고 있다. 나는 그 시스템을 바꾸려고 하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돈을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둘 사이는 갈등 관계가 아니다. 우리 내면에도 '이기심(selfishness)'과 '사심 없음(selflessness)'둘 다 존재한다. 오늘날에는 이기심만 개발됐다. 다른 쪽이 활동하도록 허용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발현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당신이 마음의 문을 열기만 하면 사심없는 영역이 활동할 것이다."

    ―사회적 기업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는 다른 것인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늘 있었다. 이는 이익의 일부분을 NGO나 어떤 단체들에 내놓는 것이다. 자선이나 기부금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사회적 기업은 그런 자선이 아니다. 비즈니스를 통해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어떤 사회적 문제를 말하는가?

    "한국에는 공해·범죄·빈곤·자살·실업 문제가 없는가. 어느 나라에도 사회적 문제는 있지 않은가."

    ―선생은 한국의 사회적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인가?

    "나는 한국의 사회적 문제에 즉각적인 해답을 갖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창의적인 사회적 기업을 만들면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가령 수감자들은 감옥을 나오면 다시 범죄에 연루되고 또 감옥에 들어간다. 사회적 기업은 범죄의 순환고리를 끊을 수 있다. 옥중에서 수감자들을 데리고 나와 경력을 쌓거나 수입이 될 일자리를 준다. 이럴 경우 석방되면 다시 감옥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사회적 기업의 성패는 시장에서 소비자들의 선택에 달린 것이 아닌가?

    "소비자가 그 제품을 원하지 않으면 사회적 기업도 살아남을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잘못된 기업이다. 소비자들에게 기꺼이 지갑을 열게 하려면, 시장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과 경쟁해서 사회적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사회적 기업은 이익을 추구하지 않기 때문에 더 싼 가격에 더 좋은 품질, 서비스를 내놓을 수 있다. 가령 수감자를 데리고 나와 재활하게 하는 사회적 기업이 있다. 이익 추구 기업이 수감자를 위해 그렇게 할 수 있는가. 범죄율을 낮추는 데는 아예 관심이 없다. 어디에서든 돈을 버는 데만 바쁘다. 어쩌면 이들이 그런 사회적 문제를 만들고 있지만, 우리는 그런 문제를 해결한다. 사회적 기업은 남들의 관심에서 밀려난 일을 하고 있으니 경쟁이 있을 수 없다."

    ―내게는 굉장히 이상적으로 들린다. 선생의 사명감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사람들의 착한 마음을 믿기 때문이다. 오직 돈만 추구하고 이를 삶의 목표로 삼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게 된 것은 착한 마음을 드러낼 수 있는 시스템이 막혀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자본주의가 그렇게 교육시켜 온 것이다. 이들이 처음에는 로봇처럼 보이지만, 당신이 사회적 기업을 시작하면 이들도 뜨거운 피를 가진 인간임을 알 것이다."

    ―선생은 '빈곤 박물관'을 세우는 것이 꿈이라고 말한 적 있나?

    "그렇다. 마치 공룡을 보여주는 박물관처럼. 빈곤이 존재하지 않아 그것이 무엇인지를 모를 때쯤 말이다. 젊은이들이나 다음 세대는 과거에 있었던 가난이 어떤 것이었는지 보고 싶어할지 모른다. 박물관을 둘러보면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대접받았고 얼마나 참혹하게 살아왔는지를 보고 놀랄지 모른다."

    ―인간 세상에서 빈곤이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파라다이스'를 꿈꾸는 것 같다.

    "인간은 그런 환경을 만들 수 있다. 300년도 아닌, 30년 전을 돌아보라. 한국은 어떠했고, 중국은 어떠했나. 수십년 전으로 돌아가면 중국은 기아 선상에 있었다. 그런 중국은 이제 제2의 경제 대국이다. 앞으로는 지금까지 보지 못한 변화가 또 일어날 것이다. 2030년이면 방글라데시에도 더 이상 가난한 사람들이 없을 것이다."

    ―선생이 말하는 '빈곤'은 무엇을 기준으로 삼는가? 끼니를 해결하기 어려운 상태를 말하는 것인가?

    "빈곤에 대해 여러 정의가 있다. 유엔과 세계은행은 '하루에 1.25달러 수입이 없으면 가난한 사람'으로 분류했다."

    ―다음 스케줄은?

    "아, 점심 시간이 지났다. 끼니 해결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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