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마을서 콩나물 심는 '촌장 주교님'

입력 2013.08.10 03:00

[만해 평화상 김성수 주교]

- 14년前 세운 '재활공동체'
콩나물 기르고 빵 팔아서 월급, 여기선 모두가 '친구'라 불러
받는 것보다 주는 게 좋은 삶… 그걸 실천한 이곳이 하늘나라
만해 기리는 賞 받게 돼 감사… 종교의 벽 넘은 소통이라 생각

만해대상 로고 이미지
"할아버지, 할아버지! 우리는! 최고다!"

지난 7일 인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지적장애인 직업재활 공동체 '우리 마을'. '촌장' 모자를 쓴 성공회 김성수(83) 주교가 건물 2층 작업장 문을 열고 들어섰다. 여기저기서 장애인들이 "할아버지" "최고다" 하며 소리를 쳐 금세 왁자지껄해진다. "원래 식사기도 때 구호예요. 함께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제가 '우리는!' 하면 다 같이 '최고다!' 하는 거죠. 이제 자기들이 세상에서 제일 귀한 사람인 걸 좀 아는 것 같아. 하하하."

대한성공회 초대 관구장, 성공회대 총장 등을 지낸 김 주교는 14년 전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땅을 내놓아 이 공동체를 세웠다. 장애인들은 나이에 상관없이 모두가 '친구', 김 주교는 그저 '촌장' 아니면 '할아버지'로 불린다. 김 주교는 11일 강원도 인제군 하늘내린센터에서 열리는 만해대상의 평화 부문 수상자다. 김 주교는 "만해를 기리는 상을 종교의 벽을 넘어 이렇게 받으니, 감사하고 부끄러울 따름"이라면서 "이런 게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소통이 아니겠는가 생각한다"고 했다.

모두가 친구인 지적장애인 공동체

50여명의 '친구'는 이곳에서 콩나물을 기르고 빵을 구우며, 간단한 전자부품을 조립해 매달 30만~80만원 월급을 받는다. 160평 공장에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직원들이 함께 무농약·친환경 콩나물을 하루 2t씩 생산한다. "한 여성 장애인 '친구'가 첫 월급 25만원을 받아 홀어머니께 속옷을 선물했어요. 태어나 여태껏 바보라고 손가락질만 받고 살던 아이가 난생처음 제 힘으로 번 돈, 홀어머니와 이웃들이 그 속옷을 붙들고 밤새 함께 울었다데요." 김 주교는 "강화도 물맛이 좋아 콩나물도 맛이 최고"라며 "이제나저제나 콩나물 많이 팔아 친구들 월급 많이 주는 게 내 소망"이라며 웃었다.

인천 강화군의 지적장애인 직업재활 공동체 ‘우리마을’에서, 올해 만해대상 평화부문 수상자인 성공회 김성수 주교가 장애인 ‘친구’들과 동요를 부르며 손뼉을 치고 있다
인천 강화군의 지적장애인 직업재활 공동체 ‘우리마을’에서, 올해 만해대상 평화부문 수상자인 성공회 김성수 주교가 장애인 ‘친구’들과 동요를 부르며 손뼉을 치고 있다. /강화=이덕훈 기자
1964년 서른넷 늦은 나이에 신부가 된 그는 국내 첫 지적장애인 특수학교인 성베드로학교 교장으로 10년 넘게 일했다. 1987년 성공회 서울교구장 시절엔 정동 주교좌성당에서 6·10 국민대회의 서막이 된 '4·13호헌 철폐를 위한 미사'를 집전했다. 상계동 철거민촌에서 시작된 '나눔의 집' 운동, 외국인노동자 쉼터인 경기도 마석 '샬롬의 집' 등이 모두 그가 교구장으로 있을 때 자리를 잡았다. 8년간 성공회대 총장 재직 땐 '등록금을 밥값으로 낭비할 수 없다'며 판공비를 모두 반납했다.

그런데도 그는 늘 "하느님 앞에 가면 먹고 놀고 잠잤다는 말밖엔 할 게 없다"며 손사래를 친다. "장애인 교육시설장은 제가 아이들과 잘 노는 재주가 있어서 그리된 거고, 6·10항쟁 때도 내가 아닌 누구라도 같은 일을 했을 거예요."

"뜻이 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

김 주교는 "우리 마을에서 살게 된 게, 여태껏 살아오는 동안 으스대고 잘난 척한 죄를 회개하라고 하느님이 시간을 주신 것 같다"고 했다. "우리 장애인 '친구'들은 늘 솔직해요. 잘났다고 자랑하는 일도 없어요. 받는 것보다 주는 게 좋은 것, 그걸 실천하는 게 하늘나라예요. 내가 줄 것은 조금밖에 없고 받는 것만 많이 받으려고 하니까 시비가 일어나지요."

그는 요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것"을 말하는 주기도문의 구절을 자주 묵상한다고도 했다. "우리가 서로 몸 부대끼고 사는 동안 소외된 사람과 더불어 사는 거, 그게 천국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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