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히로시마에 원폭이 떨어진 지 68년 되는 날인 6일 요코하마항에서 일본 해상자위대 사상 최대 규모의 헬기 호위함 '이즈모(出雲)' 진수식을 가졌다. 이즈모는 만재 배수량 2만7000t에 대잠 헬기 9대를 동시에 운용할 수 있다. 함 갑판 길이가 248m로 중국의 첫 항모 '랴오닝'의 305m보다는 짧지만 우리 강습 상륙함인 독도함보다 49m나 길다. 그래서 약간의 개조로 미국이 개발 중인 수직 이착륙 스텔스 통합 공격기 F-35B를 탑재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일본은 이 전투기를 도입할 예정이다. '이즈모'가 언제든 항모로 바뀔 수 있다는 얘기다.
항모는 원거리 작전을 위한 것으로 본질적으로 공격용 무기이다. 일본이 하필 히로시마 원폭 투하일에 이런 준(準)항모를 진수한 의도가 무엇이냐는 논란을 낳을 수밖에 없다. 일본은 항구의 조수 간만 차를 고려한 택일이라고 하지만 그런 조건을 갖춘 날은 한 달에도 5~6일이나 돼 설득력이 없다. 함명(艦名)도 처음엔 진주만 공격의 지휘함이었던 '나가토(長門)'로 하려 했으나 미국의 반발을 우려해 바꿨다고 한다. '이즈모' 진수 도끼를 내리친 사람은 '나치식 개헌' 운운한 아소 다로 부총리였다. '이즈모'는 독도 영유권 주장을 하는 시마네현의 옛 이름이다. 이러니 아베 총리가 번호가 '731'인 자위대 비행기에 올라 '731 부대'를 연상시킨다는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도 우연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날 '이즈모'에는 일제(日帝)를 상징하는 욱일기(旭日旗)가 펄럭이고 있었다. 지금 독일 군함이 나치 깃발을 단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그러나 일본은 스포츠 경기장에서까지 욱일기를 흔들고 있다. 아베 총리는 히로시마에서 열린 원폭 피해자 위령식에서 일본이 본 피해만 강조하고 왜 그런 일이 초래됐는지, 일본의 아시아 침략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아시아인이 희생됐는지에 대해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베 총리의 머릿속에는, 원폭이 히로시마에 떨어지던 날 일제 징용에 의해 그곳 군수 공장에 끌려가 강제 노동하던 조선인이 얼마나 많이 목숨을 잃었으며 일본 정부가 그날 이후 수십 년 동안 거창한 기념비가 세워져 있는 히로시마 평화공원 안에 조선인의 원혼(怨魂)을 달래는 위령비(慰靈碑) 하나 세우는 데 얼마나 인색하게 굴었는가 하는 사실은 들어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베 총리는 피해자의 시늉을 하는 가해자의 행동을 보며 진짜 피해자들이 어떤 감정을 갖게 되는지를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
지금 일본은 미국 학자의 말대로 자신들의 가해(加害) 역사를 진실대로 받아들일 생각은 조금도 않고 '군사(軍事) 정상화'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 일본은 평화헌법을 바꾸든, 아니면 정말 '나치식'으로 헌법 해석을 변경해 헌법을 무력화해 '전쟁 할 수 있는 일본'을 만들든 '군사 대국화'의 예정된 길로 갈 것이다.
일본은 대잠(對潛) 초계기와 대잠 헬기만 무려 250대를 운용할 정도로 질적으로는 중국을 능가하는 해군 대국이다. 중국은 전략 핵잠수함에 이어 항공모함까지 서태평양 지역에 투입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은 우리보다 GDP가 각각 7배, 5배 큰 나라이다. 그런 나라들이 군비 경쟁을 벌이게 되면 중간에 끼인 우리가 어떻게 숨을 쉬느냐가 당장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이 틈바구니에서 우리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국가 진로를 어떻게 설정하며, 그에 필요한 안보 전략과 군사 전력(戰力)을 어떻게 갖출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은 어떤 국가적 과제보다 앞선 민족 생존의 문제다.
입력 2013.08.08.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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